-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생 동안 정원을 가꾸면서 살았던 헤르만 헤세가 자연과 함께 했던 일상의 성찰들을 글로 모은 것이다. 작가이자 화가이고 원예가였던 헤세에게 있어 ‘정원’은 영혼의 안식처였다. 그의 순수한 노동은, 이성적인 시각보다 인간의 감성을 성찰하도록 하는 넓이와 폭을 지녔으며, 전쟁으로 황폐해진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구도자적 삶을 발견하였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매혹되고 황홀해하던 헤세는 인생의 성숙기를 자연을 통해 무르익고자 했다.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직접 그린 수채색 그림들, 흙 묻은 작업복 차림과 밀짚 모자를 쓴 채, 화단을 가꾸고, 돌길을 깔고, 거친 포도원을 일구는 일상의 모습들을 살필 수 있다. 아름다운 세계 어디에선가 벗어나 낯선 손님으로 날아온 앵무새를 보고 기뻐하던 시인의 마음이, 새의 언어를 이해하는 그의 너그러움이 정신적 고양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극점으로 다가왔다.  

 

 

 

 

헤세는 목련나무와 난쟁이분재를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의 시선으로 각각 바라보았다. 거대한 목련나무는 그에게 성장하는 모든 것, 충동적이며 자연스러운 생명의 상징이며, 아무런 근심 없이 탐욕스럽고 풍성해지는 유혹의 소리이다.

침묵을 지키는 난쟁이나무는 그다지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낭비하지도 않는 그것은 자연이 아닌 정신이었다. 목련나무가 지나치게 만족스럽고 포만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볼 때마다 독일 국민을 황홀한 낙관주의에 빠뜨린 1914년의 전쟁을 떠올렸으며, 독일 측의 비참한 패배를 상기시키는 비관주의자를 난쟁이분재와 연결시켰다. 헤세는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 일컬었다. 목련나무는 수액이 끈끈하게 넘쳐 오르고 풍성한 꽃잎들은 후덥지근한 향기를 품어내었으며, 난쟁이분재는 자신 속으로 더욱 깊이 침잠해졌다.

 

 

낯설고 불유쾌했던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헤세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사귀는 일을 그만 두었다. 작은 사물들, 이를테면 지팡이, 찻잔, 꽃병, 그릇, 책상, 책꽂이를 가득 채운 수많은 책 등과 일상적 교류를 대신 했다. 또 다른 친숙한 대상들은, 보고 만지는 사물들이 그것이다. 낡은 방에서 작은 베란다로 통해 있는 입구는 마법에 걸린 듯 고요한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것은 헤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정원에는 가장 아름다웠던 나무가 거대한 시체처럼 누워 있다. 폭풍으로 부러진 서양 밥태기나무는, 예수를 배반한 제자 유다가 매달려 죽은 나무라는 전설에서 유다의 나무로도 전한다. 전쟁이 끝난 무렵, 헤세는 혼자 이곳에 왔었고, 모든 삶은 전쟁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파괴된 세계를 내면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었으며 머물 곳이 필요했던 그 순간, 정원 한가운데 분홍빛으로 환히 빛나는 꽃들로 뒤덮인 거대한 한 그루의 이 나무가 정착의 이유였다. 콩과식물에 속하며 라틴어 명칭은 체르치스 실리쿠아스트룸, 원산지는 남유럽, 도처에서 관상용 관목으로 쓰인다. 가짜 요한의 빵으로도 불리는데 어쩌다가 유다와 가짜 요한이 뒤섞여 불리게 되었을까? 또한 둥치가 대단히 굵은 이 거대한 나무가 관상용 관목이라니.. 하지만 그 나무는 거대한 시체가 되었다.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은 절제하는 습관에서 나오며, 이런 능력은 원래 누구나 타고났으나 현대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왜곡되고 잃어버린 채 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서정성 같은 것들이다. 눈에 띄지도 않고 일상 속에 흔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의 둔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본인 소유의 재산이 아니어도 평생 임대인으로서 한 조각의 땅을 일구게 됨을 기쁘게 수용했다. 시인의 행복에서, 참으로 그윽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났다. 그는 나무를 존경한다. 특히 한 그루씩 홀로 서서 자라는 나무를 존경한다. 마치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고독하게 버텨낸 위대한 사람과 같은 존재로써 말이다. 사소한 부주의로 잃어버린 주머니칼은 헤세를 우울하게 했다. 그가 살아오면서 여러 변화를 겪어오는 동안 가장 오래 지니고 있던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였으며, 죽어버린 박물관의 진열처럼 신성하게 여긴 잡동사니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칼은 여러 해 동안 거의 날마다 사용했었던 일생의 동반자였기에, 마땅히 탄식의 노래가 절로 나왔으리라.  

 

헤세는 정원에서의 여름이 너무도 빠른 속도로 조급히 왔다가 지나가 버리는 것에 놀랍고도 염려스러워 했다. 작은 정원에 봄이 온 것을 기뻐하면서 씨앗을 뿌리고, 앞서 죽어간 식물들의 잔해를 거름으로 주었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하는 이따금의 순간, 땅 위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들만이 사물들의 순환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물들의 덧없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서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특별한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너무도 기이하게 여겨졌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정원은 가장 풍요로워지고, 시인은 몸의 모든 숨구멍을 통해 자연을 빨아들인다. 한껏 무르익은 복숭아가 특유의 단맛을 내면서 더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그 순간, 만지자마자 굴복하며 손 위로 떨어지니, 지식과 충만한 힘을 지닌 삶의 절정기에 도달한 모습이다. 많은 잎사귀에는 초가을의 빛깔이 서려 금속처럼 어두운 청동빛을 띠고 희미하게 반짝인다.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덧없고 얼마나 빨리 작별을 고하는지 알기에, 달콤한 성숙함이 돌연 갑자기 시들고 죽어버릴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늦여름의 이 아름다움에 대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 되어버린다. 희미하게 빛나는 잎사귀들이 서서히 졸음에 젖어 작별을 고하고, 서서히 시들어간다. 일생일대의 거창한 죽음을 준비하려고 매일 천천히 작은 죽음을 겪는 것이다. 그 짧고 매혹적인 시간은 이내 사라진다. 우리는 한 시대의 늦가을, 몰락하면서 해체되어가는 세계 속에, 텅 빈 충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원에서보내는시간』, 헤르만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