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는, 17세기 중엽 미국 뉴잉글랜드 어둡고 준엄한 청교도의 식민지 보스턴을 배경으로, 죄에 대한 냉혹한 시선과 맹목적인 종교에 심취한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종교적인 이상주의자들이었던 청교도들의 비윤리적인 현실과 성적 욕망을 억압하던 시대에, 정신적 구원에 유달리 집착하여 엄격한 종교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백 년 전 어느 여름날 아침, 감옥 앞 풀밭, 길가에는 보스턴의 주민들이 모여 있다. 생후 3개월 된 아기(펄)를 안고 햇빛 아래로 걸어 나온 젊은 여인은, 남다른 우월함을 갖춘 귀부인의 모습으로, 가슴 언저리에는 빨간 천에 금실로 가장자리를 수놓은 A자를 드러냈다. 불운과 치욕의 어두운 그림자를 아름다운 후광으로 변화시켜 나타난 '헤스터 프린'은, 감옥에서 바느질한 절망적인 심정을, 카인의 이마에 찍힌 낙인보다 더 견디기 힘든 표시를, '주홍 글자-A(adultery)'로 표현했다. 그녀를 처형대 단상 위에 세 시간 동안 세우고, 군중의 매서운 시선을 받은 것과 함께, 평생 치욕의 상징으로 주홍 글자를 달도록 판사의 판결이 내려졌다. 그녀의 죄는 간통이었으나, 상대 남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녀는 상대가 누구인지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먼저, '주홍 글자'를 가슴에 매단 강인한 정신을 지닌 여인 '헤스터 프린', 존엄한 젊은 성직자의 가면을 쓴 간통의 죄인 '아서 딤스데일' 목사, 선인에서 악인으로 변모해가는 헤스터의 남편 '로저 칠링워스'이다.

 

아서 딤스데일 목사는, 현명하고 고매하며 동시에 신성한 정신을 지닌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분이라는 한결같은 찬사 속에 늘 광채가 나는 사람이다.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청년 목사였으니, 뉴잉글랜드 땅에서 이 목사만큼 뭇사람으로부터 숭상받은 이는 없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죄의 두려움을 설교하는 위선적인 생활을 지속한다. 더불어 양심의 가책으로 날로 심신은 나약하고 쇠약해진다. 헤스터 프린이 주홍 글자를 단 지 7년의 세월이 지난 뒤, 총독 취임 설교를 마친 후 처형대 위에 올라가, 헤스터와 펄 그리고 보스턴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친다. 목사의 가슴에는 'A'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죄를 고백한 뒤 쓰러져 죽는다. 그의 회개와 고백은 그의 영혼을 구원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내게는 딤스데일의 최후 고백이, 죄의 위선이며 구차한 자기 변명이며, 치졸한 파렴치범의 독백으로 여겨진다. 좀 더 일찍 양심적인 밝은 눈을 뜰 수는 없었을까? 종교라는 틀 안에서 갖춰진 편의를 만끽하는 자의 입에서 나온 그 궤변을, 인격의 본질을 냉철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불완전한 도덕률인가. 당시 목사란 정치가들보다 훨씬 더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게다가 이 직업은 사람들로부터 거의 숭배에 가까운 존경심을 받았기 때문에 아주 야심 많은 자들의 구미를 끄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정치적인 권력조차 좌지우지할 수 있던 것이다. 7년 동안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형벌을 대신했다고 볼 수는 없다. 

 

로저 칠링워스는 딤스데일의 주치의로 지내면서, 아내의 상대가 딤스데일 목사라는 것을 알고, 그의 정신적 고통을 자극하는 데 부심한다. 음험한 복수를 가하려 모종의 계획을 성공시키려는 찰나,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한 딤스데일의 고백으로 인해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복수를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아왔을 이 노인의 사악한 목표는 활력과 정력, 영혼이 모두 빠져나간 악령과 지옥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 책이 의도하는 바는, 딤스데일을 선인(善人)으로 부추기고, 상대적으로 칠링워스는 악인(惡人)의 다른 이름으로 변모한다. 이들의 대치는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며, 천국과 지옥으로 양분된다. 왜 인생을 이렇게 밖에 못살았을까? 괄목할 만한 지성과 정신적인 수련을 불필요한 복수로 소모시킨 이 남자도 참 불쌍하다.

 

헤스터는 타고난 강인함과 보기 드문 재주를 지닌 여인이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생계에 걱정이 없었으며, 수입의 대부분은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썼다. 대중의 희생양이요, 일생의 노예였던 그녀였지만, 주홍 글자를 가슴 깊이 새김으로써 자신의 괴로움만이 아닌 딤스데일의 몫까지 끌어안고 살아갔다. 또한, 목사와 자신 사이에서 낳은 펄에 대한 애정이 극진했고, 가난한 자와 상처입은 이웃에 대한 봉사로 헌신하며 일생을 순교자처럼 살아갔다. 헤스터의 묘비 위에는 방패형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림자보다 더 어둡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빛나는 오직 한 점의 빛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검은 바탕의 붉은 A.'

 

 

* 발췌 : 호손이 『주홍 글씨』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선조들이 있었다. 호손의 가장 윗대인 윌리엄 호손은 세일럼에서 치안판사를 지냈고, 고조부인 존 호손은 뉴잉글랜드 역사의 슬픈 에피소드, 소위 ‘세일럼의 마녀 박해 사건’ 때 잔인한 재판관 노릇을 했다. 그 까닭에 호손은 늘 어두운 죄의식에 무겁게 짓눌려 있었다. 하느님을 경배하고 악마를 쳐부순다는 명분을 앞세워 무고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인간의 양심과 존엄성을 저버린 조상들의 반이성적인 행위가 호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며 평생 그의 마음을 지배했던 것이다. 따라서 호손은 훗날 가문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려고 자신의 원래 성인 Hathorne에 w를 넣어 Hawthorne이라고 바꾸는 꼼수를 부리기도 할 정도로, 전통과 원칙이라는 굴레를 벗어나려 노력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주홍 글씨』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종교적 원칙으로 대표되는 낡은 사회적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따뜻한 영혼을 가진 헤스터라는 자유로운 여인을 통해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주홍글자』, 나다니엘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