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다룰 이야기에 대한 정의를 미리 내리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불안의 심리를 갖게 된 요인에 대한 정의이다. 그 정의는 곧 지위를 뜻한다. 지위란,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말한다.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고 타인에게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과 관심을 받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위는 우리의 성취에 달려 있고,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 불안의 원천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사랑결핍 - 타인이 자신을 주목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맞장구를 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낼 수 없다. 애정결핍이 주는 영향은,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판단에 맡긴다. 혹시 타인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속물근성(snobbery) - 어렸을 때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애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뀐다. 나이가 들면서 애정은 성취와 관련을 맺기 시작한다.

기대 -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광고 또한 청중의 마음에 갈망을 심어놓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면 많을 것을 갖고도 비참할 수 있다.

능력주의 - 경제적 능력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가난한 사람들은 '불운하다'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라고 묘사되었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불확실성 - 개인적 성취란 주로 경제적 성취를 의미한다.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호의를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용주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되는 사실을 잘 아는 모든 노동자의 삶은 임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불안이 떠날 수가 없다.

- 불안의 해법(내가 보기엔 위안이라고 해야 옳다)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에서 찾을 수 있다. 지위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다양한 사람들의 시도와 해결책이다. 지위를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일 뿐이다.

철학 -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에픽테토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품이나 업적에 대하여 하는 말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며, 먼저 이성으로 그런 말을 검토해야 한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가장 터무니없는 관습과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의식들이 '하지만 그것이 전통이야'라는 말로 용인되고 있다(샹포르). 그러나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 불안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도 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적절한 목표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예술 - 예술은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풍자나 분노가 서려 있기도 하고,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 낮은 지위에 놓인 주인공의 도덕적인 면을 부각시킨 소설, 미술 아카데미가 하찮게 여긴 서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은 화가들, 비극 작품, 부패한 권력을 풍자한 사람들을 통해 묘한 만족감을 얻는다.

정치 - 현대의 지위 불안에 대한 정치적 관점이다. 사회적 위계 때문에 우리는 그 뿌리 깊은 위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체념하도록 훈련되어 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진술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이다. 그 믿음을 설파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층이며 무색무취의 가스처럼 사회에 방출되었으며, 오직 바보나 미치광이만이 여기에 반대할 뿐이라고 못 박아둔다.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기독교 - 우리는 모두가 가장 민주적인 물질인 먼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공평한 위안을 얻는다. 광대한 풍경이나 폐허 역시 불안을 다독여주는 효과가 있다. 기독교는 가난이 선과 공존하고 초라한 직업이 고귀한 영혼과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성공과 실패를 윤리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재규정했다.

보헤미아 - 보헤미안은 전통적으로 집시를 가리키며, 부르주아적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 광범위한 사람들이다. 보헤미안들이 싫어하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대표하는 거의 모든 것을 지독하게 싫어했으며 그들을 무절제하게 모욕하는 것, 여론을 격분시키는 것이 기본 원칙이며 자랑으로 여겼다.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P22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P80

여론의 빈곤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깨달음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불안,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피곤한 욕망 사랑의 표시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갈망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된다.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