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책을 많이 읽다보니 거의 식상한 상태에 돌입하기 일보직전이었는데도 이 책을 또 선택한 건 아르헨티나 여행기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점과 아나운서 손미나가 쓴 책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전작 스페인과 일본에 대해 쓴 여행기를 읽어보지 못해 과연 손미나 씨는 여행에서 느낀 점들을 어떤 감성으로 풀어낼지 궁금하던 차였다.

TV에서 손미나 씨를 봤을 때는 약간 깍쟁이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는데, 책에서 만난 그녀는 의외로 수더분하고 넉넉했으며,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한 집에 사는 요리사 총각들을 돕기 위해 샌드위치 판매에 나서고, 인디언 출신인 길거리의 기념품 판매자와도 단 한 번의 물건 구매를 통해 관계를 계속적으로 엮어 나가는 모습이 도도하게 보였던 그녀의 이미지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바꿔 놓았다.

책의 백미는 빙하여행을 하면서 만난 내륙지방 가우초들과의 우정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인연이었던 것처럼 엇갈린 매듭을 풀며 만남이 지속되었고,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맞았을 때에도 가우초들 중의 한 명인 하비에르가 있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어서 방문한 하비에르의 시골집은 갖가지 동물과 함께 하는 소박한 전원 풍경의 편한 곳이었고, 낯선 손님을 대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어찌 그리 따뜻한지...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의 삭막함이 비교되어 두드러질 정도로 아르헨티나의 따뜻함이 온풍처럼 강하게 전해져 왔다.

에비타의 조국, 월드컵에 자주 등장하는 축구강국, 탱고의 나라,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도만이 내가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르헨티나의 매력에 바져 그토록 아끼고 잊지 못할 장소로 꼽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북부와 내륙 지방이 각각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이제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어쩌면 다음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응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손미나 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얼마동안 거주했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이웃과의 친밀도하며 아르헨티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단기간 체류로는 쉽게 생성될 것 같지 않아서다. '이곳 풍경이 이래서 끝내줘요' 식의 책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의 따뜻한 내면을 알게 해주는 깊이 있는 여행서에 끌리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일 것이다. 그게 바로 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