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나는 안나보다 키티에게 매력을 더 느꼈다.그리고 브론스키보다는 레빈에게 더 끌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키티의 순수하고 여성스러운 매력과 레빈의 무겁고 진지한 성격이 더 좋았던 듯 하다. 이제 다시 읽는다면 다른 인물에게서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안나 카레니나>가 현대의 뉴욕에서 다시 태어났다.

톨스토이가 주요인물로 내세웠던 네명의 주인공들인 안나 카레니나-안나 K,그녀의 남편인 알렉세이 카레닌-알렉스 K, 그녀가 빠져들었던 인물인 알렉세이 브론스키-데이비드 주커먼,그 책의 또다른 한 축의 사랑인 콘스탄틴 레빈-레프 가브릴로프, 키티 오블로스카야-카티아 자부로프를 그대로 뉴욕으로 데려와 이들에게 새로운 직업과 시공간을 준다. 

이 네명의 주인공들은 톨스토이가 썼던 원작의 무거움을 다소 벗어버리고 생동감있는 현대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책을 좋아하는 안나는  책속의 주인공과 같은 남성과 결혼하기를 꿈꾼다. 예를 들면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인 히스클리프나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디아시와 같은. 그래서 그녀는 책을 옆에 낀 선생님을 연모하기도 하고 육감적이고 심오한 느낌의 셔츠 깃 아래까지 갈색곱슬머리가 굽이치고,작고 둥근 안경을 쓰고 톨스토이나 최소한 디킨스정도는 읽는 어떤 남자를 그리워한다.

그녀는 책속의 주인공처럼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속에서는 어른들이 원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녀의 결혼은 촬영기사의 눈에 보인 것처럼 체념,어쩌면 두려움을 태우고 남은 재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띈 한 남자, 기차역에서 만난 그녀와 "발라라이카"연주(길거리 연주)를 듣고 있는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 음악을 듣고서 그녀의 것까지 2달러를 모자에 넣어주는 그를 만난 것이다. 그 남자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들고 있었으며 녹색에서 갈색으로 넘어가는 가을 풀잎같은 눈동자를 지녔다. 

그렇지만 그녀가 꿈꾸는 삶과 현실은 달랐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데이비드는 자신이 시작한 문장을 받아서 마무리 할 줄 아는 영혼이 통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었다.그녀는 데이비드로 인해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캐서린 같은 심정이 되었다. 데이비드는 그녀의 내면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글씨들마저 전부 읽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고 안나는 어수룩한 린튼(알렉스)보다는 동굴에 사는 미개인(데이비드)를 택했다.

안나는 데이비드로 인해 살아숨쉬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현실속에 발을 딛지 못한 새처럼 어디에서도 안정을 얻지 못한다. 그녀의 선택은?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며 주인공들의 감성보다는 차분한 이론전개에 책속에서 헤맬 때가 많았는데 일단 이 책은 손에서 놓기 싫을 정도로 감각적이며 재미있다. 특히 안나의 감성을 생각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밑줄이 그어지며 나와 비슷한 생각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아마 내속에 숨어있는 동화적이고 감상적인 부분을 표현해 주어서 그런 듯 하다.

주인공 안나가 데이비드에게 '당신의 표현으로 나를 살아숨쉬게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던 것처럼 나에게 책이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게 묻는다 "나를 살아숨쉬게 할 수 있니?"

이 책의 대답은 "나 어때?"하며 당당하게 대답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