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과 같은 페미니즘 소설로 이 소설을 추천하는 기사를 보았다.

82년생 김지영을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기에 기대를 갖고 읽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2년생 김지영에 비해 좀 더 "쎈" 소설이다.

우선 소재부터가 데이트 폭력, 성폭행이다보니 읽기 불편한 부분도 있었고,

표현의 방식 또한 과감했다.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닌지라 공감의 정도는 덜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을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쉽게 말할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을 끄집어내어 소설화한

작가의 시도와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진아를 비롯하여 수진, 유리, 동희, 강현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소설을 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가장 '나쁜 놈'은 동희다.

물론 진아에게 데이트 폭력을 가한 직장 상사도 있지만,

죄질의 정도를 놓고 보았을 때 동희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여자의 삶을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악랄하다.

진아, 수진, 유리, 이영 그녀들 모두가 피해자다.

읽으면서 동희의 과거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어찌나 소름끼치고 화가 나던지..

여자에 대한 삐뚫어진 사고를 가진 탓일까.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도 동희와 같은 남자가 그런 일 따위 없었다는듯

말간 얼굴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유리는 결국 동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하지만,

만약 그때 그녀의 곁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손 내밀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렇게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째서 여자의 잘못이 아닌데도, 피해자인데도,

정작 질책을 받고 비난의 시선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여자가 되어야 하는지..

심지어 같은 여자인데도 행실을 어떻게 했길래

그런 일을 당하냐는 말을 서슴치 않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데이트 폭력을 당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딸에게,

행실 운운하며 부끄럽다는 말을 내뱉는 엄마가 생각나서 씁쓸했다.

결국은 사회의 인식, 인식의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진아, 수진, 이영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자신의 삶을 일으켜세운다.

이제 시작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그녀들의 삶을 응원한다.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현규는 유리와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니었을까.

불안해하며 유리의 자취방 짐정리를 한 것도 그렇고, 유리의 일기장 이야기도 그렇고,

뭔가 있을 듯한데.. 마지막까지 의문이 풀리지 않아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