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허리가 어찌나 쿡쿡 쑤시는지. 행복해 보이는 눈앞의 화분을 괴롭히며 화풀이까지 하고 있었다. 야 내 허리가 이렇게 아픈데. 넌 그렇게 환하게 웃고 있니? 이 뭐 망령난 노릇인가 하다만은. 정말 허리가 아파서 며칠 잠을 못자다가, 며칠 잠만 자다보니 조금 이상해지는 것이다. 파스를 사다 붙였고. 그 손으로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가 눈물 콧물 비적이며 쏟아냈다.

2004년, ’문학은 누가 하는가?’ 에 대한 강연의 일원으로 캠퍼스에서 김원일 작가를 만난적이 있다. 그 분이 말하시길. ’20대에 자신의 평생 삶의 깊이가 결정되기 때문에 다독은 꼭 필요하다는 것. 그 시기를 지나서 얻은 것들은 어떻게 해도 자신의 가슴속 ’칩’에 입력되지 못한다는 것.’ 당시에도 멋진 말이다, 여기며 적어 두었지만 ’지금’을 위한 경고성 멘트가 될 것이라고는.

내 가슴속의 칩이 만료기간이 다가온건가. 여전히 새 책을 보고 흥분하고. 향을 맡으며 도발되지만, 읽는 순간 풀이 죽는 현상을 반복하다보니 숭숭한 의문이 든다. 자꾸 풀이 죽는게 거듭되니까 몇 페이지 보고 쌓고 다른 책 꺼내고. 또 쌓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맡에 다보탑이 몇 개의 추종탑들을 거느리며 쌓아져있다. 밤새 붕괴되지 않은것이 다행이다. 붕괴되었다면.

’20대에 평생 삶의 깊이가 결정된다’는 말씀은 찾아온 20대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이지, 굳어진 정의는 아닐 것이다. 자꾸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은, 말랑말랑했던 내 칩이 자꾸 굳어가고 있다는 관찰 때문이었다. 무엇을 봐도 놀랍거나 감동스럽지 않으니 자꾸 예전의 것들을 찾아보게 된다. 괴테가 말하길 젊은이는 <정보>가 아니라 <자극>을 찾는다는데, 정말 그런가보다. 자극 없는 정보는 무색무취의 와글거림.

"저는 가능하면 두꺼운 책을 좋아해요. 주로 유럽 소설들은 책이 얇아요. 미국은 땅이 넓어서 그런가 책도 두꺼워요.(웃음) 존 어빙 같은 소설가들 너무 좋죠. 이야기 솜씨와 그런 걸 보면 가슴이 설레요, 지금도. 새 책이 나와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들고 있으면 벅차요. 이 얘기를 했더니 박민규 씨가 그러길, “형, 그런 책을 보면 이런 생각 들지 않아?” “무슨 생각?” “허, 이 사람 참…….(웃음)” 그래서 한참 웃었던 생각이 나요. 아무래도 제가 젊은 시절에 읽은 책들이 기억에 남아요. 요즘엔 읽긴 읽어도 새삼 감흥이 그때만 못한 것 같아요. 젊을 때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메일로 받아본 소식지에는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를 알게 된 것은 2005년에 <고래>를 읽고 나서였는데, 그것이 어찌나 오금이 저리도록 마음에 드는지, 무지 웃겼던 몇 페이지는 워드로 옮겨두었다가 프린트해서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단지 심심할 때 마다 꺼내 보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지금도 몇 개의 조각난 프린트물을 지니고 다니는데. 모두 ’우주의 힘’을 묘사한 구절들이다.

이미지화. 시각화. 거침없이 꿈꿔라. 온 우주의 힘이 너를 인도하리니..분명 파울로 코헬료는 나의 ’자극’이었는데, 일련의 비슷한 내용을 인쇄하는 활자들이 무색무취의 와글거림이 되며 ’정보’가 되고 있는 지금. 이제 모두 집어다가 서재 골방중 가장 습한 곳으로 이동시킬 기세. 너희들이 부끄럽게도 ’자극’을 자칭하는 이상 더 이상 내 자극이 되지 못하고 있어. 미안하다. 헌책방에 팔아버리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남들에게도 그저 ’정보’가 되버릴 것 같아 잠수시켜 버릴련다.

’정보’ 말고 ’자극’이라구.

갑자기 허리 통증이 찾아온 것은, 더 이상 앉아 있지만 말고, 밖으로 나가 햇볕을 좀 보라는 진정한 우주의 신호일지도. 자극찾아 삼만리- 자극과 감동을 채집해야겠다. 내 청춘, 젊다는 그 ’한 밑천’마저 떨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