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책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에 이어 두 번째로 읽었다. ’베이루트’에서 ’렉서스’까지 오는 동안 저자가 나름 스스로 공부도 많이하고 세계적으로 방대한 조사에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책의 구석구석에 저자가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를 돌아다니면서 각 국의 조그마한 도시까지, 시골 촌부까지 만나고 기록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자신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세계화의 구체적인 사례와 정황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해 보인다.
이 책은 초판이 1995년에 씌어진 것이고 난 개정판을 본 셈이다. 벌써 13년 전에 초판을 썼고 개정판도 벌써 9년 전이니 세계화를 인식하고 주창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90년대 중반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비지니스와 생활 전반을 장악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저자는 세계화가 대세이고 세계화를 위한 세부적인 전략과 전술도 나름대로 제시했으니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초판과 개정판의 차이가 어느정도 되는 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렉서스’로 대별되는 세계화와 ’올리브나무’로 대별되는 정체성을 분석한 후 두 이념(or 흐름, 세력)이 한 편에서는 대립적으로 전개되면서도 결국 세계가 한 차원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균형을 잡고 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전작에 이어 이번 책에서도 저자(Mr. 프리드먼)는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전작을 뛰어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
전작과 비슷한 저자의 의식(세계관)은 ’유대 선민사상’과 ’미국 우월주의’다. 저자가 하느님이나 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준은 오직 ’랍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다른 종교인들에게도 인터뷰를 하고 기록도 하지만...) 중동문제를 바라볼 때도 그 기준은 이스라엘 소재 유대인 학자에 의해서다.
전작과 다른 저자의 모습은 중동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전작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에서 중동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통찰력, 객관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마무리했다. 그리고 어찌보면 전작에서 찾아내지 못한 해결방안을 위해 이 책에 집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뿌리깊은 중동분쟁 상황에서 저자의 말처럼 ’올리브나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렉서스’를 중동사람들이 찾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피가 소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저자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소련연방의 붕괴가 ’제2의 세계화 시대’를 열었다고 선언한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자본주의(내가 보기에는 자본주의라는 표현보다 제국주의라는 표현이 어울리기는 하지만)가 세계화를 이끌었고 브레이크 없는 ’제1차 세계화’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유발하여 참혹하게 결말을 가져왔고 그 강력한 반발로 1945년 전후부터 세계는 ’냉전’으로 치달았다.
저자의 분석으로, 제2차 세계화는 ’냉전’ 시대에 이념과 헤게모니를 지키고 확장하려는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우방국과 제3세계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지원하고 포섭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제 내부적으로 태동하였고 소련연방의 붕괴로 ’냉전’이 사라지면서 본격적인 ’제2차 세계화 시대’가 개막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진영이든, 과거 사회주의 진영이든, 제3세계에 속하던 간에 모든 세계 각국과 자본(저자 왈 ’전자투자자 집단’)들이 더 이상 ’냉전’ 없이, 양보나 두려움없이 지구상의 모든 지역과 사람을 상대로 시장을 넓히고 이익을 쫒아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렉서스=Globalization’의 객관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이다.
무엇이 ’냉전’을 파괴했는가? 무엇이 사회주의를 붕괴하게 만들었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무너진 것이 ’자본주의의 승리’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회주의가 몰락한 시기의 ’자본주의’와 ’시장민주주의’ or ’자유민주주의’는 더이상 ’시장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는 아니었음을 볼 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사회주의가 경멸했던 ’자본주의’가 아니었고 ’자유민주주의’라기 보다 ’복지주의’에 가까웠다. 그래서 냉전이 붕괴되고 전세계적으로 자본이 범람하고 지구적인 세계화가 시작되었을 때 과거 서구 자본주의 지역 역시 극심한 ’복지 후퇴’와 ’빈부격차 확대’, ’시장자율의 축소’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냉전’을 파괴하고 사회주의와 시장자유주의의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 이유를 ’3대 민주화’, 즉 통신방법의 변화인 ’기술의 민주화’, 투자방법의 변화인 ’금융의 민주화’, 세계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방법의 변화인 ’정보의 민주화’에서 찾는다. 기술의 민주화는 컴퓨터화, 소형화, 디지털화, 통신기술과 압축기술의 발전 등 기술혁신에 따른 것이고 금융의 민주화는의 민주화는 위성수신과 인터넷, TV와 케이블이 가져왔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세 가지 기술과 방법의 발전이 기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진영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저자의 ’민주화’라는 표현이 아주 어색하다. ’민주화’라는 표현은 아무데나 붙일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난 저자가 이야기하는 ’민주화’를 ’발전’이나 ’대중화’라고 정의하고 싶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민주화’의 내용 역시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일상화’되고 모두에게 ’대중화’되고 쉬워진 것일 뿐 ’민주화’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나 개념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창시했다. ’정보면역 결핍증(MIDS : Microchip Immune Deficiency Syndrome)’과 ’황금구속복’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보면역 결핍증’은 한 마디로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 문화와 정보를 자연스럽게 한 국가나 체제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황금구속복’은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국가가 취해야 하는 정치,경제체제를 말한다.
저자는 세계화 시대를 선도하는 집단을 ’전자투자자 집단’이라 부른다. 이는 세계화를 이끄는 주체가 국가 단위가 아니라 자본과 펀드가 중심이되는 국적 불명의 ’전자투자자’라는 것이다. ’전자투자자’는 이미 글로벌 경제와 금융체제에 속해있는, 참여하는 대규모 사설펀드, 은행, 증권사, 투자사, 다국적기업, 그리고 개인을 포함한다. 이런 ’전자투자자 집단’이 수익과 미래를 찾아 전세계를 찾아다니며 투자하고 수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실현한 후 빠져나가는 것이다. 저자는 전자투자자 집단이 국적도 없고 구분도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인 단속이나 규제가 어려우며 국가기관과 같은 규제기관을 국제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어려우며 따라서 각 나라와 그 나라의 시민들이 그 위험성을 알고 그에 맞추어 자국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전자투자자 집단’을 자국 경제체제로 끌어들이는 것이 세계화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하면서 한 국가가 전자투자자 집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황금구속복’을 입어야 하고 그에 따라 여섯가지 키워드를 갖추어야 요구한다. 투명성, 글로벌 기준, 부패 청산, 자유언론,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민주화...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적 불명의 이익 우선의 전자투자자 집단을 그대로 두면 ’이익 만능주의’와 ’승자독식’만이 대세가 되어 오히려 세계경제를 망치고 세계화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이러한 세계화의 일차적인 특징에 의하여 세계화에 반대하는 여러 세력과 이해관계자들이 극렬하게 반세계화 투장에 나서고 있다고 말한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고 실업자가 속출하며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상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저자는 세계화의 어두운 면을 명확히 알고 있다. 세계화의 그림자는 세계화의 자체 속성에 기인한 것으로 저자는 세계화의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세계화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세계화가 너무 ’가혹’하고 ’과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단절이 심’하고 ’주제넘게 끼여’든다. 또한 세계화는 너무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지속가능한 세계화’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세계화’는 현재 세계화의 주도국가이자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국가인 미국이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속가능한 세계화는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위한 특수하고 독립적인 정치학, 지정학(국방,외교), 지경제학, 지경영학, 윤리학을 개발해야 하며,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위해 각 국가가 해야 할 일 세 가지, 즉 트러피즈, 트램펄린, 안전망을 제시한다.(새로운 단어와 함께...)
- 트러피즈(Trapeze) : 영화 타잔에 나오는 그네의 일종. 개인의 생존을 위한 생업활동 또는 취업활동
- 트램펄린(Trampoline) : 텀블링의 도약대. 트러피즈를 타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줄을 놓쳐 공중에서 추락할 경우 이 그물을 이용해 다시 뛰어오를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
- 안전망(Safety Net) : 사회적 취약계층이 최소한 생계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한 사회부조제도
결론적으로 저자는 세계화는 대세이고 세계화의 주요세력인 전자투자자 집단을 통제할 수 없으나 각 국가는 스스로 현실에 맞게 세계화를 받아들이고 전자투자자 집단을 방어해야 하며,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오만한 제국주의가 아니라 온화한 세계화의 주도국가로 나설 것을 준엄하게 촉구한다. 세계화는 결국 ’미국화’라고 말하면서...
이 책을 나쁘게 받아들이면 저자는 ’유대주의’를 감춘 채 미국 지식인이라 내세우면서 ’세계화주의자’의 가면을 쓰고 국제적인 헤지펀든, 다국적 기업, 다국적 미디어, 정치세력과 결탁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본의든, 아니든 어느정도 그런 관계와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객관적으로 저자가 하는 일이 그러니까...
하지만 역자(신동욱)의 후기대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세계화의 3대 요인 중 한국은 ’기술의 민주화, 대중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앞서가고 있고 ’금융’과 ’정보’에 있어서도 열심히 뛰어가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세계화를 우리 스스로의 체제와 구조에 맞도록 변경하여 주도해야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나 경제구조가 반세계화로 나갈 수 없는 이상, 세계화를 받아들이면서 국가 단위의 원칙적인 목표와 방향을 세워서 보호할 것은 보호하고 키워나가야한다. 미국산 뿐 아니라 캐나다산 쇠고기도 수입해야 한다. 단, 까다로운 조건과 검역권을 갖추고서... 농산물이나 공산품, 서비스도 수입해야 한다. 단, 국내 농수산업 구조조정과 발전대책을 수립한 후에, 경쟁력과 신규산업 창출전략을 수립하여 진행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다수의 실업자와 약자들을 보호하고 재교육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시스템을 갖추면서...
이 책에서 한국 실정에 아주 뼈아프게 다가오는 내용이 많다. 특히 국가의 지도급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정치권, 언론계, 기업계, 공무원, 학자들의 실태...
이명박정부는 입으로는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정책과 인물과 태도는 ’반세계화’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행정부와 검찰, 경찰은 청와대의 시녀와 노예가 되어가고 있고 언론은 전근대적인 관행과 사리사욕에 목매고 있다. 정치권... 이들은 아무 생각 없다. 기업들과 학자들도 뒤쳐지기는 마찬가지...
’기술’, ’금융’, ’정보’에 대한 청와대와 행정부와 정치권과 언론계의 반응과 태도를 보라. 도대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인지...
아... 어찌하랴....
결국 국민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가...
세계화,
황금구속복,
자유무역,
개발도상국,
정보면역결핍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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