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최근에 읽은 <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보다 먼저 저자가 쓴 책이다.

 

저자는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리스 신화 중 프시케와 에로스 신화처럼 명료하게 사람들을 도와주는 신화가 드물다는 신념에 따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서양인들에게 광범위하게 뿌리깊이 각인된 그리스도교 신화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에 등장했다.

저자는 < ~ 남성성 He >에서 처럼 오래된 고대 신화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현대인과 고대 그리스인의 몸을 구성하는 화학성분상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인간심리의 무의식적인 동력도 고대인과 현대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 시대에 따라 인간이 만족을 느끼는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물리적이건 심리적이건 간에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저자가 인간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고대 신화를 분석한 것은 인간행동과 심리패턴을 공부할 때, 인류 초기로 되돌아가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근원적인 것일수록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하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즉, 인류 초기의 근원적인 표현에서 인간심리의 기본적인 패턴을 파악한다면 오늘날 변이된 형태로 등장하는 인간심리 또한 이해하기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신화는 외면의 이성적인 세계와 함께 상대적으로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심리, 즉 내면의 세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차원에서 실체를 묘사하고 있고 신화는 과학적이거나 이성적인 발전의 산물이 아니라 집단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내가 여성과 여성성을 이해하는데 적지않은 도움이 되었다. '에로스'로 상징되는 남성성의 모습과 '프시케'로 상징되는 여성성의 모습,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내면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남성성으로서의 '아니무스'와 여성성으로서의 '아니마', 그리고 신화가 이야기하는 여성의 발달의 역사와 갈등, 고민, 충돌, 변신, 충동, 충만함, 시련 등을 현대의 여성에게서 유추해볼 수 있어 배우는 바가 적지 않았다.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의 주요 등장인물과 그에 따른 개념은 "아프로디테", "프시케", "에로스", "그림자", "아니무스", "사랑하는 것", "딜레마", "패닉", "분별", "바른 자세", "스틱스 강", "지하세계", "조이와 엑스타시" 등이다.

 

"아프로디테(Aphrodite)" : 생식이나 본능적 모성에 충실한 원시적인 여성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우라노스(하늘)의 아들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생식기(生殖器)를 잘라 바다에 던진 데서 생겨난 하얀 거품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아프로디테는 바다와 항해의 안전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널리 숭배되었으며, 스파르타·테베·키프로스 등지에서는 전쟁의 여신으로도 숭배되었다. 그러나 사랑과 다산(多産)의 여신이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결혼을 관장하기도 했다.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태어난 여신이고 따라서 태고의 바다 같은 여성성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는 의식이 발달하기 이전의 진화적 시간을 의미한다. 아프로디테는 윈시적 여성성이며 모든 여성은 내면에 아프로디테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시련에 빠뜨리나 역으로 프시케라는 갓 태어난 여성성이 성장하고 건강하게 자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대 여성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갈등은 자신의 아프로디테적 특성과 프시케적 특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프시케(Psyche)" : 어두운 밤하늘에 초승달이 등장하듯 갓 태어난 여성성의 이미지. 프시케의 등장은 의식 진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한다. 프시케의 특성은 순수하고 수려하며 숭고하고 천상적이다. 모든 여성의 내면에는 프시케가 역시 존재한다. 여성이 자기 안에서 프시케를 만날 때 폐부를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면에서 모든 여성은 부분적으로 왕의 딸, 즉 공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개의 여성 안에 있는 프시케적인 부분이 이 세상을 위해서 매우 사랑스럽고 완전하며 심오하기 때문이다. 인간인 왕의 셋째 딸인 프시케의 미모에 신인 아프로디테가 질투를 느끼면서 신화는 시작된다. 

 

"에로스(Eros)" : 에로스가 만든 낙원의 정체를 밝힌다. 여성이 흔히 보여주는 남성에 대한 복종이나 무의식적인 수용의 정체를 탐색하도록 도와준다. 질투한 아프로디테가 자신의 아들인 에로스에게 프시케가 죽음과 사랑하도록 명령하지만 에로스는 실수로 자신이 화살에 상처를 입으면서 프시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프시케를 죽음의 산정에서 구출하여 낙원으로 데려간다. 프시케는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고 매일 밤 남편과 함께 보내지만 절대로 남편을 쳐다보지도 어떠한 것도 질문해서도 안된다.(사실 거의 모든 남편이 아내에게 이런 것을 바란다.)

 

"그림자(Shdow)" : 프시케 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여성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평과 잔인한 파괴력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를 추구한다. 언니들은 "등불과 칼"을 이용하여 남편을 해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언니들은 프시케의 그림자로서 프시케의 의식을 진화하게 만든다.

 

"아니무스(Animus)" : 여성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이야기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내면적인 남성성인 아니무스가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상에서 경험은 하지만 인식하지 못한다. 일단 여성이 자신의 아니무스를 알고 나면 아니무스는 더 이상 그 여성의 심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것(Loving)" : 에로스의 화살에 상처를 입어 사랑과 사랑에 빠진 프시케의 초개인적인 초의식적인 체험을 다룬다. 사랑하는 것 = Loving과 사랑에 빠지는 것 Being in love는 구분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원형적 혹은 신적인 세계에 침투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신과 여신으로 보인다. 상대를 통해 서로 초개인적이고 초의식적인 존재 영역을 체험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서로를 쳐다보는 것을 지켜보면 이들은 서로를 넘어서 그 이상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즉,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신, 에로스를 바라보는 프시케가 되는 것이다.

 

"딜레마(Delemma)" :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에게서 그 사람을 넘어선 신적인 경지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상대를 넘어서 결국 상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심한 고통이 동반된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최선책은 모든 것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고요함이 필요하다. 프시케가 시도하는 것이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추는 것이었다.

 

"패닉(Panic)" : 여성의 통곡이나 발작같은 동물적인 체험이 팬이란 그리스 신에서 기원하며 여성의 이런 비이성적인 반응이 위기극복을 위한 좋은 방법임을 시사한다. 여성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우세, 즉 남성적인 요소에 대해 복종적이던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무의식의 남성적인 요소는 가끔식 여성이 외부세계와 맺는 관계를 부정적으로 통제한다. 여성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아니무스가 의식적 자아, 즉 ego와??성의 진화를 도와야 한다. 프시케는 자신의 시련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 에로스 대신 수많은 다른 여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마침내 아프로디테에게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이 난관에서 해방시켜 주는 조건으로 잘 알려져 있는 네 가지 과제를 준다.

 

"분별(Sorting)" : 첫 번째 시험이다. 여성의 심리는 집중되지 않는 의식이라 부르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미가 등장한다. 아프로디테의 첫 번째 과제는 온갖 종류의 씨앗이 산처럼 뒤셖여 있는 알곡도미를 준다. 알갱이 하나하나를 가려서 종류별로 분류하라고 시킨다. 프시케는 에로스를 통해 개미떼의 도움으로 이를 해결한다. 여성은 프시케에게 주어진 씨앗 골라내기 과제를 통해 분별에 익숙해질 수 있다.

 

"바른 자세(A right attitude)" : 남성성의 상징인 숫양을 직면하여 왕금양털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남성적인 방식이 아닌 여성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아프로디테의 두 번째 과제는 강 건너편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숫양의 황금빛 털을 가져오는 것이다. 프시케는 강가의 갈대에게 해결방안을 듣고 황금빛 털을 구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아손 등 숫양의 황금빛 털을 구하는 남성적인 방법들이 무수하게 있지만 프시케는 파괴하지 않고 충돌하지 않고 여성적인 방법으로 황금빛 털을 구하는 것이다.

 

"스틱스 강(Styx river)" : 한 잔의 물을 떠오는 과제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는 눈과 질적인 충만함을 배우는 과정이다. 넓은 시야와 정확함은 여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아프로디테의 세 번째 과제는 크리스탈 잔에 스틱스 강의 물을 가득 채워오는 것이다. 스틱스 강은 높은 산정에서 떨어져 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높은 산으로 되돌아가는 강이다. 이 강물은 굉장히 위험한 괴물이 늘 지키고 있다. 이 과제는 제우스가 자기의 아들 에로스를 보호하려고 독수리를 시켜 프시케를 도와주도록 한다. 이 과제는 여성이 어떻게 삶의 웅대함을 체험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프시케는 물 한 잔만 필요하다. 여성성의 방식은 한 가지만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그 한 가지를 잘 하는 것이다.

 

"지하세계(Persephone's realm)" : 의식의 성장을 거쳐 가야 하는 과제이다. 이 과제는 아직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으며 의식 진화의 마지막이자 최대의 시련이라 할 수 있다. 네 번째 과제는 지하세계로 가서 여왕 페르세포네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묘약이 든 상자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과제는 탑(tower)이 조언을 해준다. 프시케는 동전 두 개(나룻배 뱃사공의 배 삯)를 입에 물고 손에 보리빵 두 쪽(지옥문 사자 케로베로스에게 줄 음식)을 들고 가야 한다. 다리를 저는 노인이 노새 등에서 굴러 떨어진 지팡이를 주워달라고 하면 거절해야 하고 운명의 실로 베를 짜고 있는 세 여성의 도움도 거절해야 한다. 이 여정에서 프시케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관대함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하세계의 과제마저 해결한 다음,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과제를 마친 뒤 프시케는 상자의 뚜껑을 연다. 그러나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영원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죽음의 잠이다. 에로스는 그런 프시케를 구한 후 제우스에게 청하여 프시케를 여신으로 만든다.

 

"조이와 엑스타시(Joy & Ecstasy)"  : 여성이 의식발달의 최정점에 도달하면 자신의 여신적 특질을 발견하게 되며 개인의 심리뿐 아니라 우리사회에 가장 절실히 회복되어야 할 여성성의 최고의 선물인 조이와 엑스타시를 얻게 된다. 페르세포네의 손에 있던 아름다움의 묘약은 바로 우리 사회가 가진 강박관념의 산물이다. 이야기 초기의 프시케는 사랑스럽고 순진한 여성이다. 신탁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삶이나 성장 혹은 진화를 해나가기 위해서 소녀로서의 프시케는 죽어야 한다. 그래서 추하고 어두운 측면의 자신과 개발되지 않은 자신의 잠재력을 포함하는 삶의 복잡성을 이해해야 한다. 신화의 끝에서 에로스가 프시케를 구원한다. 구원의 선물은 전일성이다. 전일성이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에로스는 바로 여성 내면의 아니무스다. 에로스와 프시케가 나은 딸은 '기쁨 pleasure'이다. 기쁨은 곧 '조이'와 '엑스타시'다. 여성이 마침내 의식 발전단계의 최고점에 닿게 되면 자신의 여신적인 특질을 발견하게 되고 모두에게 '기쁨'과 '엑스타시'를 가져다 준다. 남성이 여성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여성이 기쁨과 엑스타시의 힘과 능력을 삶으로 되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

신화로읽는여성성She, 로버트A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