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서평] 조성오 저 <우리 역사 이야기 2 : 조선후기에서 식민지 시기까지>를 읽고 / 1993. 05., 304쪽, 돌베개

얼마 전부터 고등학교 국사책을 교과부에서 검정받기 위해 제출했다가 엄청나게 왜곡, 편향되었다는 비판이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야당에 의해 제기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교학사 국사 교과서는 일제 식민지가 한민족에게 필요했고 도움을 주었으며, 이승만이 훌륭한 대통령이며, 박정희의 쿠테타가 정당하다는 듯한 터무니 없는 일제 사관, 식민 사관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학사 왜곡 교과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당국은 여당인 새누리당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은 후 밀어붙이려는 태도다.

현직 대통령이 공적인 역사의 문제를 사적인 집안의 문제로 인식하여 국가내란 군사쿠테타를 합리화시키려 하고 집권 과정에서 발생한 정통성 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할 의지가 없는 데다가 정부 관료들과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하나 같이 제정신 박혀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의 역사에 무관심한 경우는 없다. 민족과 국가 구성원들이 헌법과 더불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익혀야 만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공유하는 역사나 문화가 없다면 어떤 사회도 공동체를 유지하고 비슷한 가치관과 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존의 국사 교과서 내용과 국사 교사들의 교육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는 현행 대학입시 제도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국사 교과서의 경우, 사회와 민족의 구성원 중에서 일방적으로 당시 지배계급인 왕조나 엘리트 계층의 역사내용을 다루고 있을 뿐, 같은 구성원이자 정당한 주권자였던 농민, 노동자, 하층계급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하나의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는, 왕조나 지배계층만이 아니라 농민 등 생산계층과 하층계층 역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은 그냥 착취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경우 반드시 지배계급은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조성오 씨의 <우리 역사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알려준다.
<우리 역사 이야기> 제2권은 조선후기 사회경제의 변화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반봉건 농민전쟁 이야기, 외세와의 격돌, 갑오농민전쟁 이야기, 조선 봉건왕조의 종말, 식민지시기의 민족해방투쟁사까지를 쓰고 있다
서술방식은 기존 국사 교과서처럼 년도별로 죽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사건이아 사안을 중심으로 해당 시기의 특징을 서술하는 것이다. 즉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사회 경제의 변화와 실학의 등장을 서술하고, 민란을 통해 반봉건 농민 항쟁 이야기를 서술하며, ‘양이’와의 전쟁을 통해 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서구 열강과의 격돌을 다루고 강화도 조약을 통해 쇄국의 빗장이 열리는 과정을 다룬다.
또한 3일 천하 갑신정변 이야기와 펄럭이는 농민의 깃발 갑오 농민 전쟁 이야기를 통해 근대로의 개혁을 위한 상하 계층의 분투를 서술하고, 일제의 강제 합병 과정을 통해 조선 봉건 왕조의 종말과 식민지화를 다룬다.
1910년대 일제의 무단 통치와 항일 의병투쟁, 3·1운동 이야기를 서술하고, 1920년대 문화 정치와 국내외 민족 해방 투쟁의 발전 과정을 다룬 후, 마지막으로 만주지역의 항일 무장 투쟁과 일제의 패망을 서술한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새롭게 정리한 것은 아래와 같다.

1. 임진왜란은 그것을 경계로 하여 조선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눌 만큼 조선 사회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분수령이었다. 임진왜란은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과 모순, 봉건 지배층의 분질을 낱낱이 드러내는 계기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잉태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봉건 사회에 나타난 변화는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신분제의 요동,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과 자본제적 맹아의 발생, 민중 문화의 대두, 실학의 등장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p.12)

2. 19세기 초중반 반봉건 항쟁(민란)은 위기에 처한 봉건 체제에 타격을 가해 더욱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선 봉건 체제가 이제 역사의 퇴물로 전락하였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끊임없는 반봉건 항쟁의 전개 과정은 다름 아닌 민중의 각성과 민중의 역량 강화 과정이었는데, 이는 반제 반종건의 기치 아래 타오른 1894년 갑오 농민전쟁의 토대가 되었다.(p.57)

3. 임오군란이 실패한 원인은 물론 외세의 무력 간섭과 민씨 일당의 사대매국적 책동에 있었다. 그러나 임오군란은 자체적으로도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군인들의 봉기는 별다른 계획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발발한 것이며, 투쟁이 개시된 이후에도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였다. 이는 청군이 봉기군인들을 공격하고 나섰을 때 대부분 군인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있었던 데서 확연히 드러났다. 이후 대원군이 등장하였으나 그 역시 뚜렷한,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임오군란은 일본 침략자와 부패한 민씨 정권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으며, 우리 민중은 외세 침략자, 낡고 썩었을 뿐만 아니라 사대매국적 봉건정권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이후 민중의 투쟁을 고무하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p.96)

4. 갑신정변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갑신정변은 한편으로는 봉건체제의 모순이 격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약하나마 자본주의적 관계가 꾸준히 성장하는 상황에서, 또 열강의 침략위협이 점점 고조되는 상황에서 근대화와 부국강병, 민족자주의 수호를 목표로 전개된 진보적 운동이었으며, 우리 역사상 최초로 근대적 개혁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갑신정변은 반봉건, 반침략 브르주아 민족운동의 막을 여는 전기가 되었으며, 갑신정변과 개화사상의 영향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의 요구, 1894년의 갑오개혁, 독립협회운동, 애국계몽운동 등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반봉건, 반침략 운동에 반영되어 역사를 이끄는 힘으로 되었다.(p.119)
=> 갑신정변에 대한 저자의 평가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 갑신정변 주체들은 내부의 힘이 아니라 외세(일본)의 힘을 빌려 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농민, 상인, 중인 등 아래로부터의 힘도 동원하지 않은 채,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기반하지 못한채 일본과 서구의 외형적 근대화에 이끌려 쿠테타식으로 시도한 갑신정변은 실제 반세도정치 친일 양반계급에게는 교훈을 주었을지 몰라도 민중운동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반외세 투쟁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을 뿐...

5. 갑오농민전쟁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굴리는 데크게 기여하였으며, 도잇에 반제 반봉건을 향한 민중운동의 길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였다. 즉, 무장투쟁으로 전개된 농민전쟁의 경험과 교훈이 후대로 이어지고 살아 남은 농민군이 이후 활빈당 투쟁, 반일 의병전쟁에 참여함으로써, 갑오농민전쟁은 민중운동을 무장투쟁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p.153)

6. 1900년대 항일 의병투쟁은 끈질기고 강력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조선군대 해산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뒤로 갈수록 의병투쟁은 전국화되고 평민, 군인 출신 의병장이 많이 대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일 의병투쟁은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는 일제의 강력한 무장력에도 기인하기는 했지만, 1907년까지 조선왕조가 사대매국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일제의 의병진압을 옹호하고 지지, 응원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또한 사대부 의병장들의 경우, 왕조나 유교식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투쟁의 일관성을 지니지 못했으며, 전체적인 면에서는 전국적인 의병투쟁이 조직화되지 못한 채 개별적, 분산적으로 진행되었고, 전민족의 역량을 동원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일제에 의해 각개격파되었기 때문이었다.

7. 3.1운동은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훈을 남겼다. 우리 민중은 3.1운동을 통해서 일제의 가혹한 식민 폭압 통치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 결코 죽지않고 살아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일제의 식민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3.1운동은 민족운동의 방향 및 주도층을 바꾸어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무장한 일제에 평화적 시위로 맞서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극명히 드러내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민족해방운동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3.1운동은 소수의 친일파, 친일지주, 친일자본가를 제외하고 전민중이 참여한 거족적인 항쟁이었으며, 이제까지 각계각층의 운동과 경험이 하나로 수렴되면서 폭발한 대규모 민족운동이었다.(p.218)
=> 3.1운동은 3월 1일 하루에 그친 것도 아니고 몇십 명이 만세를 외치고 만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3.1운동'이라는 명칭보다 '기미민족(인민)항쟁'이라는 개념이 더욱 타당하다.

8. 1931년 신간회 해산을 계기로 국내의 거의 모든 항일운동은 지하로 잠입하였으며 민족주의 계열의 반일투쟁은 사실상 그 막을 내렸다. 사실 민족연합전선의 형성은 민족적 단결을 보장하고 효과적인 항일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며 민족해방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대중운동, 나아가 무장독립투쟁까지 전개된 1920년대의 상황은 민족연합전선의 형성과 지속전 전개를 절실히 요청했다. 그러나 1920년대의 이 과제는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였으며, 이는 1930년대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이 그 치열성에도 불구하고 분산성, 단기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