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작가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 작품 속에는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멍"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서정시대"  "지구 반대쪽"  "여름은 길지 않다"  "인 마이 라이프" 등 7개 단편이 들어있다.

 

 작품해설자 뿐 아니라 나 역시 가장 눈에 띈 것은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이다. 작가의 소설에서 다양한 형식과 소재를 이루면서도 일관된 주제를 형성하는 것이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관계'라는 창을 통해 여자인물이 사랑의 의미와 한계를 가늠하고 이로써 삶의 이면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비슷한 유형의 작품이 <타인에게 말 걸기>에 실린 "그녀의 세 번째 남자"이다.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에서 여자는 자기 사랑의 '부도덕성' 탓에 남자의 곁을 떠난다. 남자의 아이를 떼고 여자는 '만약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감상을 즐길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려야 한다'라고 다짐한다. 여자의 떠남을 재촉하는 것은 아버지의 여자문제였다. 이는 긴밀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추구하는 작가 은희경다운 설정이라 한다.

 

 작가는 작품("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속에서 주인공의 사랑이 세상의 제도와 구조를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여자는 세상이 갑의 불행이 을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제로섬 게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사랑이라는 것도 그같은 관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결국에는 남자의 곁을 떠나는 외에 다른 선택이란 남겨져있지 않다. 작가 특유의 허무주의, 제도에 대한 패배감,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이 작품 속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작가의 소설세계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뿐 아니라 "서정시대"과 "멍", "지구 반대쪽"과 "인 마이 라이프" 등 작품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이 작품("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속의 남자는 '정형화된 사고방식과 틀'에 갇혀 있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새로운 사랑이 곧 새로운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고방식 밑에 놓여있는 것은, 얼마간은 적당히 결혼이라는 제도의 이점에 스스로의 삶을 기대고 있고 그런 한편으로 그것에 권태를 느끼고 일탈욕을 갖는 자기모순적인 위선이다. 물론 남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런 '정형화된 보수남(男)'이 아닌 비정화되어 있거나 보수적이 아닌 남자 또는 유부남의 세계와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풀어낼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

 

 난 위와 같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 편으로는 이해,인정하고 한편으로는 부정,거부한다. 그것은 작가의 작품 속에 설정되어 있는 남자와 여자의 캐릭터가 이 땅의 적지않은 사람들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세대에는 '보수적인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제도의 틀을 거부하고 뛰어넘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관계가 긍정적이고 활동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 모두 각자가 주어진 현실의 구조 속에서 하루하루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을, 관성의 몸부림을, 일탈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 '왜'와 '무엇을'이 없이 동물적인 생존만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관성화되고 구조화된, 껍데기같은 삶에 문제제기를 하는 역할은 순기능이라 보지만, 대안없이 방향없이 결국에는 제도에 순응하고 마는 결론은 역기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끝...

행복한사람은시계를보지않는다, 은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