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은 '문학사상사'가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李箱)'이 남긴 문학적 업적을 기리며 1977년부터 시작하여 매년 가장 탁월한 소설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을 표창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집으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발간하여 널리 보급함으로써 순수문학(무엇이 '순수'고 어디까지가 '순수'인지 모르겠지만...)의 독자층을 확장하여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98년에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선정하였고 은희경 작가의 '아내의 상자'가 대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는 은희경씨 외에 우수작으로 선정된 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김인숙의 '거울에 관한 이야기', 박상우의 '말무리반도', 엄창석의 '색칠하는 여자', 이혜경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전경린의 '환과 멸'이 수록되어 있고 기수상작가 우수작으로 최수철의 '매미'가 추가되었다.

 

 "아내의 상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불임) 아내의 모습과 방황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서울에서 결혼하여 몇 년을 살아온 부부가 삭막한 서울을 떠나 신도시로 이사오면서 소설을 시작된다.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아내는 자신만의 '방'을 얻게 되고 그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구성한다. 소설의 화자인 남편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평범하고 성실한, 그리고 조직과 규칙에 잘 적응하는 직장인이다.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낳지 않으려는 것이고 서울 뿐만 아니라 신도시의 아파트촌과 자신의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함에 혼란스러워 하면서 처음에는 세상과 단절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다가 옆집 여자와 함께 일탈을 감행한다. 남편은 겉으로는 아내를 속속들이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아내에게 문제가 발생하여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해야 할 때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아내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개닫는다.

 

 남편의 시각으로 보이는 아내는 자기 스스로를 적자생존 사회에서 도태될 열등한 종자라고 규정한다. 규격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바로 내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자기의 방을 가지게 되었을 때의 아내의 기쁨은, 자기의 방이란 곧 내면의 구체화된 대응물임을 직감한데서 나온다. 그러나 표면적인 현상의 우위와 일체의 사물화를 승인해야 하는 현대의 일상적 삶은 내면이라는 것 자체를 부적응의 증표로 간주한다. 작가는 아내의 방을 육체의 독립성과 의식의 절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일상적 현실에 등을 돌린 내면의 '유배지'이다.

 

 제목이기도 한 아내의 상자는 남편의 눈에는 '지난 시간 동안 그녀를 스쳐 지나간 상처들이 담겨있는 것'이지만, 사실 그 상자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십자수를 넣은 탁자보, 편지 뭉치, 배냇저고리, 조개껍질 목걸이 등이다. 제각각의 꼴을 갖추고 있는 이 사물들이 의미하는 것은 남편이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조각뿐이다. 황폐해진 아내의 내면을 추적해 볼 만한 단서는 아무것도 없다.

 

 소설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 인간적 기초 위에 서 있으며 그것에 대한 불만이 우리를 어떠한 지경으로 인도하게 될지 두렵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불임아내의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 나와 우리, 그리고 모든 인간의 삶과 문명 전체의 처절한 불모성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남편은 아내와 더불어 현대인의 존재론적 비극성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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