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소설 중 <연금술사>, <피아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오, 자히르>에 이어 네 번째 소설을 읽었다. <연금술사>만큼 강하게 남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언가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대하면서 삶의 근원을 되돌아 보는 모습을 통하여 '죽음'이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죽기로 결심할 정도의 용기와 지혜가 있다면 충분히 기운차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나를 비롯하여 이 책이나 내가 보내는 '서평'을 읽게 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작품 속 주인공인 '베로니카'나 '제드카', '마리아', 그리고 '에뒤아르'와 비슷한 인생을 지금도 살고 있고 그들처럼 언젠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타인들의 삶이나 일반적인 세계와 떨어져 고독하게 삶을 이어 나가거나 한순간 '죽음'의 충동을 느낄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을 '미친사람'이라고 부르고 그들을 정신병원에 가둔다)

 

 특히나 어쩌면 지금 하루하루를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앞 만 보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일수록 '베로니카'나 다른 '빌레트(작품 속 정신병원 이름)'에서 지내는 사람과 비슷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일상의 생활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은 채 매일 지속된다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고 닥친 일이나 가족, 상황에 맞추어 살아갈수록...

 

 다른 측면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되면 소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 일반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의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표현처럼 '미친 사람'을 일반적인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나 도덕,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과 세계를 만들어 살아간다면, 그들 시각이나 그들 입장에서는 나머지 우리와 같은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이 오히려 '미친 사람', '미친 사회'가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더 강조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정신병원'이나 '미친사람'에 대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삶'에 대해 서서히 돌이켜 생각하는 와중에 "죽음 = 삶"이라는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죽음이란 삶은 반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도전보다 '삶'에 대한 도전이 먼저이고 더 쉽다고 이야기한다.

 

 슬로베이나에서 살고 있는 작품 속 주인공 '베로니카'는 스물 네 살로서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한 처녀이다. 젊음, 아름다움, 매력적인 남자친구, 만족스러운 가족... 하지만 그녀에게는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 마음이 너무 공허하여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아 그녀는 결국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한다.(아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듯...)

 

 하지만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정신병원이고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일주일 남짓한 생명이다. 그녀는 빌레트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제 몸 안에 든 한줌의 광기를 어쩌지 못해 바깥 세상과의 끈을 놓쳐버린 사람들. 젊은 한 때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한 남자 때문에 행복한 일상에서 돌연 지옥을 발견한 제드카, 유능한 변호사였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광기의 발작으로 일상 밖으로 내던져진 마이라, 유고슬라비아 대사인 아버지가 정해둔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정신분영증 환자 에뒤아르...

 

 작가는 인생에서 꿈을 되찾고 그 꿈을 실현하는데에는 반드시 한 줌의 광기가 필요하다고 제드카와 마리아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에서 분리된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라냐의 당시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 역사와 문화를 잠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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