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다시 공부하다가 미술과 연관성이 떠올랐다. 수학이 단순한 자연과학이 아니고 인간이 수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미술을 비롯한 인문학과 수학의 연계성이 구체적으로 궁금해진 때문이다. 몇 개월 전 서양수학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리스신화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도 수학이 미술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근대 이전에는 더욱...수학과 자연과학이 미술과 예술에 영향을 미치고 미술과 예술의 영감이 수학과 자연과학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보고 싶었다.
저자는 수학과를 졸업한 후 수학과 미술을 연관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를 마친데다가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수학과 미술의 접근에 대한 책을 여러권 집필했기에 선뜻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책을 모두 읽고난 소감은 조금 ’당한’ 기분이다. 너무 기대 이하다. 저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리고 내가 너무 기대를 크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자의 저술은 수학과 미술을 연결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수학사를 나열하는 가운데 가끔 양념처럼 유명한 미술가들의 명작을 섞어놓았다는 느낌이다. 그나마 수학사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너무 선언적이고 독단적이다. 수학에도 미술에도 깊이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비록 내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고 미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미술을 수학과 어정쩡하게 연결짓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비싼 돈 주고 산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미술사에 대한 간단한 정보다.
저자는 서문에서 벌써 자신이 이 책을 왜 집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동기를 어설프게 말하고 있다. 그냥 저자 스스로가 수학을 공부하다가 ’도형을 다루는 기하학의 발달에 대한 탐구를 하는 가운데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작품과 기하학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되어’서 미술사에 대해 공부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만다.
저자에 대한 불만은 저자가 유럽이나 서구에서 유학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렇게 서구 중심적인 사고편향을 보이는가’이다. 그리고 특정한 시대의 민족문화에 대해서 근거없이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오리엔트시대에 이집트는 내세의 영원성에 관심이 있었던 반면에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집착’했다고 주장한다.(43쪽) 그리고 뒤에서는 이집트인들이 사후세계에 집착한 반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현실의 생활과 함께 이원론적인 성향이 강한 민족으로 이상주의적인 미술을 추구했다(85쪽)고 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이중적인 판단의 잣대를 드러내고 있고 결국 서구인들이 ’우월하다’는 서구중심적인 사고편향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집트인들이 내세의 영원성을 강조하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이 현세를 강조하거나 중요시했다고 애기하면 될 것을 왜 ’집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또 저자는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책을 집필하는 저술가로서 미묘하고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자율성과 합리성은 수학문제를 푸는데 반드시 필요한 수학적 사고랍니다.(61쪽)"의 경우, 마치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학생들이나 수학에서 중요한 것처럼 어설프게 말한다. 수학이 대중에게서 멀어진 이유가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고되고 어렵워 수학에서 멀어지게 되는 원인인 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또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제전이 ’자주독립의 기상’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당시 올림픽 제전과 ’자주독립의 기상’이 어울리기라도 한 것인지... 87쪽에서는 고대 오리엔트 미술이 신이나 군주를 위한 것이지만 그리스 미술은 철저하게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올림푸스 신들을 숭상하여 거대한 신전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었고 개인과 국가의 중요 사항을 결정할 때 신탁을 실시했다.
마지막으로 같은 수학계 관계자임에도 저자는 다른 수학 저자나 번역자들과 용어나 표현이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독일 수학자 ’다비드 힐버트(David Hilbert)’의 경우 내가 읽은 관련 서적에서는 ’힐베르트’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독일어를 한글로 옮길 때 적절한 표기라고 본다. 또 미분학의 발견을 둘러싼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갈등국면에서 이 부분을 깊게 분석한 학자들의 일반론과 달리 저자는 "라이프니츠가 1674년 미분학 발견에 대한 논문을 영국 왕립학회에 보고했는데 왕립학회측에서 이미 뉴턴이 동일한 결과를 발표했다고 라이프니츠에게 통지했다(231쪽)"고 설명한다. 내가 이미 읽은 여러 서적에서는 라이프니츠가 영국 왕립학회에 보고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었으니 이 책에서 새로 얻은 내용에 대해 간단히 요약한다.
1. 고대 오리엔트 수학과 미술 중
- 알타미라 동굴 벽화, 구석기 시대, 문명 발생 이전시기, ’보이는 대로’ 그리기
- 이집트 벽화의 ’정면성의 원리’ : 신, 파라오, 귀족은 가슴이 그림에서 항상 정면으로 표현... 이는 그들은 뛰어난 자들이니 영원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
-> "람세스 2세와 아들", "물동이 처녀", "세명의 여성 악사"
2. 고대 그리스 수학과 미술 중
- 이집트 조각 : 영원성과 정면성 -> "수니온 곶의 쿠로스" BC 600년
- 고대 그리스 조각(고전주의 양식) : 비례, 질서, 조화를 중시하는 묘사주의 -> "큰 창을 든 남자", "원반 던지는 사람" BC 440년
- 고대 그리스 미술 : 전반기에는 기하학적 양식이 중심으로 비례, 대칭, 조화를 추구하였으나 알렉산더 정복 이후 헬레니즘 시대에는 역동적이고 관능적인 여성 누드가 등장 -> BC 4세기 "크리도스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술주정이 노파"
3. 중세 수학과 미술
- 로마의 기독교 탄압시기 : 기독교인들의 도피처 ’카타콤’ 내부 벽화("선한 목자") ->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랑을 그림
- 초기 기독교 미술 : 기독교 교훈을 전달하는 ’설교’가 목적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대로’ 그리기. 비현실적이고 무감정한 표현
-> AD 504년 "빵과 물고기의 기적", "십자가의 처형과 부활" / AD 10세기 "빈무덤", "천지창조" / AD 14세기 "삼미신"
- 로마 미술 : 그리스의 영향으로 사실주의적 -> 폼페이 벽미술 : 로마네스크, 고딕양식으로 거대한 욕망과 권위를 표현하는 성당 건축 +_스테인드그라스 -> 노트르담 대성당
4. 르네상스 수학과 미술
- 그리스 문화의 부활. 인간중심의 ’인문주의’. 종교개혁과 신세계 탐험
- 특징 : 사실주의. 기하학과 원근법 적용 : 보티첼리 14C "삼미신", 1477년 "봄" / 마사치오 1429년 "성삼위일체"
[ 삼미신, 보디첼리][ 봄, 보디첼리 ] [ 성삼위일체, 마사치오]
- 미술 변화의 역사 "최후의 만찬" : 1303년 지오토 -> 1490년 기를란다요 -> 1494년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를란다요] [다빈치]
- 미켈란젤로 : 대리석으로 고대 그리스 조각의 이상과 해부학적 구조를 완벽하게 구현 -> 1499 "피에타", 1501 "다윗", 1536 "최후의 심판"
- 라파엘 : "대공의 성모", 1510 "아테네 학당"
- 딘토제토 : 1593 "최후의 만찬" -> 완벽한 조화에서 벗어남
5. 근대 미술과 수학 : 과학 혁명의 시기
- 수학의 5대 발견 : 해석기하학(페르마, 데카르트), 미적분학(뉴턴, 라이프니츠), 확률론(파스칼, 베르누이), 역학(갈릴레이, 뉴턴), 만유인력의 법칙(뉴턴)
- 원근법 + 좌표개념 : 홉베타 1689년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 길"
- 자연주의 미술 :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 활기차고 역동적인 사실주의
-> 빛과 순간 : 카라바조 1603 "의심하는 성 도마", 젠틸레스키 1613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닛"
-> 대각선 시선의 역동성 : 루벤스 1619 "레우키포스의 딸들의 납치", 1611 "십자가를 세움"
-> 순간의 포착 : 할스 "즐거운 포터", 반다이크 1635 "사냥 중의 찰스1세"
-> 빛과 구도 : 램브란트 1642 "야간순찰"
- 중세 말기 : 퇴폐와 향락(로코코) -> 프라로나스 1766 "그네"
- > 신고전주의 : 소묘와 선, 비례 중시 : 자크 루이 다비드 1807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6. 현대 수학과 미술 : 과학의 세기와 자율성의 증대
- 마네 1863 "풀밭 위의 점심식사"
- 후기 인상주의 점묘파 : 쇠라 1884 "아니에르의 물놀이"
- 인상파 : 모네 1914 "수련" : 빛의 강약에 따라 형태와 느낌이 달라진다
- 사진기 발명과 추상화 추구 경향 : 원근법의 파괴 + 시점의 파괴
-> 세잔 1900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마티스 1940 "나부" 1948 "붉은 색의 커다란 실내풍경", 피카소 1937 "게르니카" 1932 "거울 앞의 잠자는 여인"
- 4차원을 표현 : 뒤샹 1912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 연속적인 움직임을 표현 / 달리 1931 "기억의 고집" -> 인간의 잠재의식과 초현실 세계를 표현
[ 달리 1931 "기억의 고집" ]
- 초현실주의 : 마그리트 1929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유클리드의 산책" / 백남준 1984 "굿모닝 오웰" / 에셔 1958 "생명의 창조"(프랙탈)
[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백남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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