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족에 대한 대학원이나 연구소의 논문도 아니다. 작가가 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동기가 없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직접 알 길은 없지만 작가는 더 이상 이 땅에서 '가족'이라는, '부부'라는, '부모'라는, '자식'이라는 이름 아래 왜곡된 관계와 상처를 지적하고 싶었고 작가 나름대로 21세기에 맞는 개념과 질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책을 통해서 나는 여러가지를 다시 되새길 수 있었고 여러가지를 다시 깨닫거나 반성하게 되었고 가족이나 부부, 부모자식, 형제 등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해석, 사례 등을 통해 다시한번 배울 수 있었다. 늘상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가족'이, 행복이나 사랑이 필요충분조건인 것 같은 가족이 그 구성원의 인식과 행동, 노력 여하에 따라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절망'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폭력'의 '방패'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식에 대한 그릇된 '사랑'이 자식을 망가뜨리고 자식이 스스로 '어른'이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며 때로는 '비정상적'인 아이들을 양상하고 있다.

 

 '결혼'에 대해 무지한 청춘들이, 지각변동이 일어난 세상과 사회의 의식과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결혼'과 '가부장제' 제도가, 그 제도를 신봉하는 그릇된 어른들의 인식이 '남편'과 '아내'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고 단절시키고 함정에 빠트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원수로 생각하게 만드는 뒤틀린 사회상이 우리와 우리 후배들, 자식들을 위협하고 있다.

 

 책 속에는 가족 등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이야기나 개념이 다수 들어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하면,

- 가족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경우, 만약 그 가족의 누군가가 어떠한 형태로든 희생을 하지 않는다면 그 가족은 자손 대대로 같은 문제를 150년 동안 계속해서 안고 간다. 특히 가족 내에서 폭력이나 학대, 허영과 체면과 과시를 위한 삶, 증오와 분노, 위선과 탐욕이...

- 아침밥의 전설 : 아침밥은 한국 사회의 가족에서 어머니의 정성과 희생에 대한 대명사다. 집 안팎의 사소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자식들을 전적으로 키우는 아내인 경우에도 남편에게 아침밥을 먹이지 못하면 '집안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라는 심한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의 남자들은 결혼 후에도 '아내'와 '엄마'를 구별하지 못한다.

- 핵가족화와 넘쳐나는 이혼, 독신자와 노후독신의 증가 등 소위 '비정상' 가족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제 현실에 부합하는 '가족'의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제 생물학적인 가족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가족, 한국인이 아니 외국인이 포함된 가족, 정신적으로 맺어진 가족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의 범위는 점차 다양해져간다.  

- 한국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왜 자신이 '결혼'을 해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채 대부분 결혼을 한다. 문제의식도 없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남들이 하니까, 집에서 독립하기 위해서, 인류의 재생산을 위해서... 모든 부부갈등의 출발은 이것이다...

- 남자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조직생활에 적응하면 오로지 부모와 처자식을 위해 '전쟁터'에만 집중한다. 아내는 이미 여자가 아닌 거의 '어머니'가 된다.

-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단 한순간도 가정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행각하지 못한다. 가족이 무너지면 자기의 인생 전부가, 조직 생활이 실패로 끝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안일하게 생각해버린다. '그녀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녀의 도덕율과 모성애와 친척,친지와 사회적 편견과 결혼이라는 인류 최고의 복지제도를 믿으며...

- 일부 가정에서 아내에게 폭력(언어폭력 포함)을 행사하는 그들은 병든 것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가 '가족'이라는 신성한 소도 속에서 면책특권을 받는다. 소도 속에서 아내도 자식들도, 본인도 스스로 망가져간다.

- 한국의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효자다. 타고난 소수의 효자들을 제외하고도 평소에 손톱이 닳도록 희생하는 엄마의 설거지를 한 번 거들어준 적 없는 이기적이고 게으른 아들들도 결혼을 하면 갑자기 효자가 되어 나를 위해 헌신한 우리 엄마가 불쌍하고 안타까워 애가 탄다. 그래서 지금까지 엄마가 했던 일은 모조리 아내에게 떠맡기고 싶어한다...(내 무의식에도 자리잡고 있는 심리...윽!!!)
 

[2008.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