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매트릭스>는 내가 케이블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영화 중 하나다. 화려한 액션이나 특수효과 뿐 아니라 미래의 가상현실에 대한 시나리오, 기술적인 요소, 그리고 네오나 모피어스가 뱉어내는 대사 등 영화의 모든 요소와 장치들이 매번 나를 집중시킨다. 언제나 특별한 생각이나 느낌 없이 TV 앞에 붙잡혀 있곤 하다가 언젠가 인터파크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주저없이 구입했다. 액션이나 특수효과는 해를 거듭할수록 매트릭스보다 나아질 것이고 예전에 제작후기를 TV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고 시나리오나 구성은 아직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영화 중 오랜동안 기억나는 대사와 묘사들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약간이나마 해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선명히 그 성격이 드러나듯이 일반사람을 위한 ‘철학 교양서’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무척 어렵다. 철학에 대한 기본 소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나름 집중하면서도 제법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100% 이해하지도 못했다. 철학자와 교수들 17명이이 이렇게 책으로 엮어낼 수 있을 정도로 영화 <매트릭스>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안겨준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생각해보면 누구나 쉽게 ’어려운’ 질문들--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왜 사는가? 실재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이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 인공지능이 가능한가? -이 떠오를 수 있다. <매트릭스>는 ’진짜’ 현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환상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미학, 마음의 철학, 종교철학, 정치철학 등 철학의 다향한 주요분야를 탐구한다.

엮은이 윌리엄 어윈이 네오와 소크라테스가 겪는 운명의 유사성이라는 모티프로 책의 첫 장을 열기 시작하면, 뉴욕 주립대 철학과 교수 배리 스미스와 미데일 대학 철학과 교수 제럴드 에리온이 바통을 이어받아 이 영화가 데카르트의 고민을 반복했음을 보여준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많은 철학자들 - 칸트와 도스토예프스키, 사르트르. 붓다, 마르크스, 라캉, 보드리야르, 비트겐슈타인, 하버마스, 레비스트로스, 아도르노 그리고 몇 해 전 타계한 분석철학자 콰인에 이르기까지 - 과 그들의 사상이 펼쳐진다.

책 속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들...
- 진정한 자유는 불안감과 내부의 분열로부터 성장하며, 인간성에 대한 한층 섬세한 인식으로 우리를 이끈다.(86p)
- 세계를 창조한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지만, 세계에 질서와 목적을 부여한 것은 인간의 의식이다.(106p,샤르트르)
- 예수는 무기력한 인류를 구원하는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신인(神人)적 잠재력의 모범이다.(172p,칸트)

서문
SCENE 1 마음의 감옥 -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1. 네오와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들을 곤경에 빠뜨린 의문들
2. <매트릭스>는 데카르트를 반복한다 : 삶은 악령의 기만
3. 보기, 만지기, 믿기 --- 진실은 어디에?
SCENE 2 가상의 스테이크
4. 인공 낙원 대신 진실의 사막을 걷겠다 : 네오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
5. 예기치 않게 삼켜버린 쓴 약 : <매트릭스>와 사르트르의 <구토>가 보여주는 실존적 본래성
6. 영화에 열중할 수록 우리는 빨간 약을 선택하게 된다 : 허구에 대한 진실한 반응의 역설
SCENE 3 윤리학과 종교의 토끼 구멍 아래로
7. 숟가락은 없다 : 불교의 거울에 비춰본 <매트릭스>
8. 모든 종교는 참되다 :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종교적 다원주의
9. 우리가 ’그’다 : 칸트가 설명하는 매트릭스 작동법
SCENE 4 진실의 사막
10. 인공적인 마음은 가능한가 : 기계가 만들어낸 영혼
11. 매트릭스는 부도덕하지 않다 : 신유물론과 주체의 죽음
12. 네오는 자유로운가 : 자유의지와 운명론의 불가사의한 통합
SCENE 5 출구를 찾아서 - 매트릭스 해체하기
13. 매트릭스, 마르크스, 그리고 건전지의 생애
14. <매트릭스...> 현실과 시뮬레이션의 사라지는 경계
15. <매트릭스>, 가해자의 히스테리 또는 새도매저키즘의 징후
역자 후기

* 저자소개 : 슬라보예 지첵(Slavoj Zizek)
1949년 3월 21일 구 유고슬라비아의 류블랴나[현 슬로베니아의 수도]에서 태어났다.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해 1972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파리 8대학에서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전공해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고 민주화된 슬로베니아의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현재 류블랴나 이론 정신분석학 학회 회장이자 런던 버크벡 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시카고 대학, 컬럼비아 대학 등 미국과 유럽의 주요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 헤겔의 독일 관념론 같은 철학적 주제를 SF 소설, 할리우드 영화,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통해 변주해내면서 이라크전쟁, 9/11,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같은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등의 논쟁적이고 도발적인 저서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이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지젝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 저널이 생길 정도로 학계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영화 매트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