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아내가 결혼했다"는 며칠 전 내가 인터파크에서 주문했는데, 마침 선배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선배가 읽어보라고 선물해준 책이다. 작년 세계일보의 ’세계문학상’ 당선작이고 작가는 연대를 나온 86학번(?) 박현욱씨...

제목부터 신선했는데, 더 주의를 끈것은 상수형이나 선배회사 직원들 모두 이 책을 알고 있고 상당수가 읽은 것처럼 반응했다.

며칠 전부터 읽던 ’1984’를 끝내지 못해서 1일 오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2일 아침에 마지막 20쪽을 끝으로 350쪽의 소설을 단순에 읽어버렸다. 소설이라는 가벼움과 축구와 부부라는 소재, 편한 문체가 쉽게쉽게 책을 읽도록 해주었고 대신 ’일처다부제’라는 주제는 책 읽는 속도를 약간 느리게 했지만 그래도 만24시간 만에 독파했다.

서평...

"아내가~"는 책 뒷면의 몇몇 평론가들이 애기한 것처럼 시대의 흐름을 약간 앞서가는 센세이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 역시 여주인공인 ’아내’의 주장에 공감한다. ’일부일처제’가 세계적인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 역사적으로 불과 200년이 조금 넘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니 굳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일부일처제’는 그냥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문화’ 중 하나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비록 인류학적으로 과거 인간의 기술과 지식이 부족했던 구석기,신석기 시대에 남자는 사냥을, 여자는 가정을 돌보던 시대에서 시작하여 인류가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몇 백만년 동안 남자들이 힘과 유전자, 전쟁과 파괴로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자리잡았듯이, 이제 바야흐로 힘이 아닌 지식과 기술, 평화와 화합이 주제인 21세기 100년 안에 남자가 아닌 여자가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형식적으로만 보면 영국의 마가레 대처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앞으로 힐러리 클린턴이나 박근혜같은 여자(사회와 역사에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지만...ㅋㅋ)가 한 나를 이끌 지도자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여성 지도자들은 ’여성’으로서의 강점이나 여성상의 장점으로서의 문화의 발전보다 ’남자같은 여자’ 또는 ’남자보다 더 남자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안정과 평화, 화합과 평등의 개념으로서 ’여성상’은 먼 미래의 일이겠지...

어찌되었든, "아내가~"의 여주인공 아내는 한 세대가 아닌, 서너세대를 뛰어넘는 문화 아이콘으로 두 남편(?)을 사랑하고 지배하고 끝까지 이끌어간다. 여주인공은 상대방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사귐을 추구한다. 이것은 단순한 ’프리섹스’를 뛰어넘어 사랑마저 ’구속’이 없는 ’열려있는’ 사랑이다. 여주인공이 어떻게 이러한 사상이나 사고방식,행동방식을 갖게 되었는지 소설에서 설명하지는 않지만, 어쨎든 그녀는 소설 상에서는 정당하다.

그녀는 ’애인’에 대한, ’사랑’에 대한, ’결혼’에 대한, ’가정’에 대한 정의부터가 남주인공과 다르다. 그녀는 남주인공이 사귀고 정식으로 사귀고 싶다고 했을 때, 결혼하자고 할 때 남주인공에게 ’다른 사람과 사귈 수 있다’고 ’다른 사랑이 나타나면 서로 구속하지 않기로 한다’는 전제조건을 걸고 동의했다. 따라서 그녀는 무죄다.

그리고 그녀는 소설 속에서 하나의 완벽한 ’여자’다. 그녀는 직장에서 남자나 다른 여자에게 뒤처지지 않으며, 섹스에서도 남자들을 최대한 만족시킨다. 그녀는 언제나 성실하고 불평불만없이 남자친구집과 가정에서 빨래와 청소, 요리를 완벽하게 해낸다. 그녀는 술 값과 책 값 이외에는 알뜰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남자친구가, 남편이 적응하기만 하면 완벽하게 두 명, 세 명의 남자친구(애인)이나 남편을 두고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신혼여행을 갔다 오고 두 집 살림을 한다.

또한 그녀는 축구에 관해서도 전문가 수준이고 나름대로의 정치적, 역사적인 감각과 주관도 있다.(그녀가 FC 바르셀로나 팬인 이유는 바르셀로나 지역이 1930년대 이후 한동안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정권의 억압에 대해서 끈기있게 저항하였고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주인’이다.

문제는 남자 주인공... 그는 전형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30년 넘게 살아온 인생이다. 그는 여자에게 점수를 주고(물론 얼굴이나 몸매가 전부는 아니지만) 점수가 괜찮은 여주인공과 섹스를 한 후 애인으로 단정지으며, 그녀가 ’자유연애’를 조건으로 애인관계를 동의했음에도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그녀를 만난다.

그는 그녀가 ’결혼 후 사랑’을 주장함에도 자신이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녀를 독점하기 위하여 결혼을 감행하며, 결혼 후 1년 만에 그녀가 또 다른 ’사랑’을 찾자 갈등하다가 현실을 인정한다. 그는 그녀의 ’이중가정’에 괴로워 하면서도, 감당하기 어려워 하면서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한 지붕 일처다부제’를 따라간다.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주관도 철학도 용기도 결단력도 없는 사람이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주도하는 ’일처다부제’에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일처다부제’를 오래 감추고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민갈 수 밖에 없고...

아마 작가는 21세기가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형태의 ’사랑과 결혼과 행복에 대한 제3의 형태’를 제시한 것이다.

소설이 주는 고민...

나는 아직(?) 작가나 여주인공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남주인공의 입장이라면 여주인공에게 결혼하자고 조르지 않을 것이며, 결혼 상대로 적절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 일과 아내 말고는 특별한 관심(축구 말고...^^) 이나 취미, 하고싶은 것이 없고 더군다나 자신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없는 남주인공은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아니 깊게 사귀고 싶지 않은 남자(사람)이다. 물론 여주인공의 삶의 자세와 방향은 부럽다. 자신이 옳다고,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태도,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도전하는 자세는 나도 배우고 싶은 점이다.

애인이든, 아내든, 가정이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40년 넘게 지구에서 살아보니 인간이 취하는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그에 맞는 업보와 결과가 따르는 것 같다. 인간이, 그것도 남자는 ’종족번식’이라는 본능으로 여자를 찾겠지만, 21세기 사회는 그런 ’본능’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각 국가의 지배자들과 자본가들과 사회학자들은 결혼과 ’생산’이 사회와 국가 시스템의 재생산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과정이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수많은 사례와 경험과 사실을 들여다보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측과 예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행복이 ’남’과 비슷하게, ’남’에게 뒤쳐지지 않는 것이 기준이 되었다면, 앞으로는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스스로의 기준이 설정될 것이고 그렇게 문화가 형성되어 가면 아마도 ’결혼’과 ’가정’에 대한 가치관과 모습도 달라질 것이고 ’미래’와 ’성공’에 대한 개념도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각자의 선택이고 결정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경험상 ’아내’도 ’자식’도 ’가정’도 스스로가 어떻게 대하고 관계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불행’이 될?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