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만 존재하는 한민족, 대안으로서의 열린 민족주의     2008-10360 김재영

 한국인들은 유달리 "민족"이라는 가치 앞에서는 쉽게 흥분하고, 감성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오랜 수난의 역사 속에서 한국인들이 "민족"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 살아남았고, 발전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한민족"을 괴롭혀 온 일본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끊없는 경계는 결과적으로 일본에 대한 왜곡을 낳았고, 일본과의 협력이 절실해진 21세기가 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과거사에 매달려 일본을 포용하지 못하는 반일 민족주의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왜곡의 구체적 사례와 그 기반이 되는 반일 민족주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1장에서는 지식층, 작가 등을 포함한 이른바 ’언론’에 의한 일본 왜곡을, 2장에서는 한일간 여러 담론에서 드러나는 오해들을 소개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일본 왜곡에 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3장에서는 일본 왜곡의 밑바탕에서 작용하는 일본관을, 4장에서는 이 모든 현상의 가장 근본적 원인인 민족주의를 다룸으로써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이러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해 나아가야할 한국의 발목을 "과거"에 묶어두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가한다.

 나는 특히 4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민족"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한민족은 "사실"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한민족은 순수한 혈통과 문화에 근거한 이른바 단일민족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다른 집단과 접촉해 온 교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타자와의 접촉은 불가피하며, 우리가 믿고 있는 "순수한 한민족"은 "사실"일 수 없다. 그러나, 민족 정기를 훼손한 일제의 쇠말뚝에 분노하고, 일본을 민족의 원수로서 잊지 못하고, 머리 잘린 단군상에 분노하고 있다 점은 허상에 불과한 "한민족"이 "현실"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생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혼자 살아가기 보다는 사회나 공동체를 구성해 그 안에서 살아가려는 속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 역시 하나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고려해볼 때, 특히나 "민족"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역사를 헤쳐온 한국인들에게 "한민족이라는 개념은 사실이 아니며 현실에서 만들어진 허구다"라는 주장이 쉽게 수용될 리 없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른바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열린 민족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일찍이 로마인은 철저한 실용정신과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게르만인에서 아랍인까지 포함하는 통일된 제국을 건설하고 근 5백년간 유지했다. 따라서 우리도 이러한 실용정신과 현실주의를 답습하여 세계화 시대에 일본, 더 나아가 다른 국가나 "민족"과의 대립보다는 협력이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한민족"의 장기적 번영을 위해 보다 유익하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열린 민족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민족주의의 왜곡과 과장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곳곳에서 "해방 후 50년 동안의 한국의 교육방침은 원수를 갚으라는 원한 섞인 것이었다"는 식의 과장된 비판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 너무 구체적 사례를 위주로 한국의 민족주의를 다루고 있어서 내용이 다소 산만했다는 점, 열린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했다는 점 등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한국의 과잉된 민족주의를 지적하고 민족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