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의학스릴러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 테스 게리첸의 장편소설 <악녀의 유물>.
나는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것이지만, 전직 의사다운 섬세한 의학적 디테일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소설들은 생생한 리얼리티가 살아 있으며, 공감 가는 주인공을 탄생시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 그런데 정말!!! 그랬다.

 

책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정말 책의 제목처럼 '악녀'의 마력에라도 홀린 듯 그렇게 책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인데, 소설은 그 시작부터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늦은 밤, 침대에서 나와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창문밖의 거리를 살피는 여자,
그렇게 집 안을 서성거리며 창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도 또다시 문을 확인하고, 어떤 낯설고 이상한 기류가

느껴지지는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여자가 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10대 딸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싱글맘, 여섯 살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표지에

실린 '왕들의 계곡' 사진을 본 순간 이집트를 꿈꾸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15년 전 교수님의 추천으로 여름방학

동안 꿈에 그리던 이집트 서쪽 사막의 발굴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꿈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었던지, 카이로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행복에 겨운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3개월 후 돌아올 때는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되어 있었고, 그 사막에서 그녀는

혼자 돌아온 게 아니라고 했다.  괴물 하나가 그녀를 따라왔다고!!!
그리고 수년간 숨어 살아왔지만 지금 그녀는 직감하고 있다.   "그가 나를 보러 오고 있어."

 

그리고 바뀌는 장면, 장소는 필그림 병원앞이다.
무언가를 취재하기 위해 벌떼같이 몰려든 보스턴의 기자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

'죽은 자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아일스 박사도 있었다.
그곳엔 또 무슨 일일까.

 

주인공은 다름아닌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 '마담X'.
심원한 박물관 세계에서 이집트 미라는 당연히 록스타 같은 존재였고, 6개월 전에 발견된 아직은 성별 미상의

미라는 이제 필그림 병원에서 CT촬영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2000년의 미스테리가 풀리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모두들 마담X를 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

병원 관계자를 비롯하여, 마담X를 발견한 크리스핀 박물관의 큐레이터 '로빈슨 박사'와 동료 '조세핀 박사',

그리고 박물관의 초청으로 CT촬영에 참관하게 된 병리학자이며 법의관인 '아일스 박사' 등이 진실을 밝히는

그 현장에서 함께 '마담X'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미라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극도로 조심하면서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는 진실.
그러나 진실은...

그들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하면서 술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때 법의관인 아일스박사의 한마디는 상황종료를 알린다.
"마담X는 이제 법의국 소관이에요."

 

미라를 싸고 있던 헝겊은 분명 2천 년이 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CT촬영에서 총알로 추정되는 금속이 발견

되면서 이제 사건해결을 위해 형사들이 개입되고, 그러면서 사건은 점차 흥미와 긴장감을 더해가는데...
미라 '마담X'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시 실제 의사 경험에서 비롯된 방대한 의학적 지식은 책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는데, 특히 미라를 분석

하는 과정이나 미라를 만드는 방법등에 대한 자세한 묘사 등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했는데 그동안 이집트

문화나 미라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의 마음까지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한때는 국제 미라 거래가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미라를 갈아서 약으로 사용했거든요.
    비료로 쓰려고 영국으로 수송하기도 했고요.
    부유한 관광객들이 집으로 가져가서 미라 공개 파티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의 미라를 얼마나 무례하게 대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지요.

 

    숨막히는 붕대에 겹겹이 싸여 1~2천년 동안 리넨 구속복에 몸이 묶인 채, 호기심 많은 고고학자가 천을

    벗겨 오그라든 잔해를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흙에서 흙으로가 아니라 살에서 가죽으로 가는 것.
    누가 그런 걸 자원한단 말인가?

   

    그것도 일종의 불멸이 아닐까요?  썩어 없어지는 것의 대안.
    내 몸이 보존되는 것이지요.  그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썩힐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게 애정 행위였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존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요.  벌레가 먹거나 썩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건 사랑이 아니죠. 소유욕이지.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에 긴박한 서스펜스, 그리고 모험의 세계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주어

더욱 좋았던 <악녀의 유물>은 테스 게리첸의 '형사 제인 리졸리 &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시리즈' 라고

하는데, 그 인기에 힘입어 2010년부터 미국드라마로 제작되고 있으며, 2011년 현재 시즌2가 방영 중이라고.
다른 시리즈들은 물론이고 드라마도 꼭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벌써부터 설레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테스 게리첸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