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과 함께 박범신 작가의 원작소설 <은교>가 다시금 재조명을 받기 시작할 즈음 작가의 또 다른

신간이 출간되었다.
그것은 소설이 아닌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는데, 2011년 고향인 논산으로

낙향한 작가가 틈틈이 SNS를 통해 기록했던 일기를 사진과 함께 엮은 책이라고 했다.
간간이 트위터를 통해 작가의 소식을 접하고 있던 나에게 신간 소식은 꽤나 반가웠더랬다.

 

    나의 지난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좁은 들길에서 신작로로, 신작로에서 기찻길, 혹은 하이웨이로, 이윽고 '하늘길'로 나아갔다.
    그것은 그대로 근대화의 길이었고 개발의 길이었다.
    동 세대의 모든 이가 걸어온 삶이 다 그러했다.
    시간보다 더 빠른 기차가 어디있으랴.
    나는 비로소 '돌아왔다'고 여긴 것이 나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에세이는 노작가의 현재와 함께 그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논산시절로 되돌아가는 추억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그러나 그것은 옛날의 그곳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의 레일을 따라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하는 새출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작가의 소소하면서도 담담한 일상들이 낯설지 않게

편안하게 다가온다.

 

문학청년기 대부분을 보냈고, 데뷔소설을 썼으며, 신혼살림을 시작했다는 그곳 논산.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논산이라고 하면 훈련소를 먼저 떠올리는 것을 안타까워한 작가는
우리의 젖줄인 금강이 흐르고, 명산인 계룡산, 대둔산, 천호산이 자리 잡은 산자수명한 곳이며,
유림과 충절의 깊고도 곧은 전통이 깃든 곳이 바로 논산이라는 것을 먼저 일깨워주는 것으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작가의 일상들이 사진과 더불어 그대로 담겨 있는 책속에는 최근 영화로 개봉되면서 더욱 주목 받게된

<은교>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마음에 깊게 다가왔던 것은 작가의

두 여자에 관한 대목들이었다.

   

    아내는 붙박이 장롱 같은 사람이고 나는 들고양이, 혹은 바람 같은 존재였다.
    유랑은 나의 질병인지도 몰랐다.

   

    어머니! 나는 입속으로 불러본다.
    히말라야 처음 갔을 때 짐을 잔뜩 짊어지고 가파른 산을 평생 오르내리는 당나귀들을 보고
    어머니가 생각나 소리 내어 운 적이 있다.
    돌아보면 어머니야말로 '히말라야의 당나귀'가 아니었던가 하면서.

 

이렇듯 아내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하늘과 호수가 접붙어 있는 곳을 벗삼아 현실과 초월의 두 세계를 내 나머지 삶에서 접붙여 살기를

꿈꾸는 작가는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 누구에게라도 사랑의 끝은 없는 게 아닐까, 아니 절대 끝나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런지.

 

논산을 배경으로 한 작가 자신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속내가 그대로 스며있어서 박범신 작가 혹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픈 독자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은 책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한폭의 수묵화와도 같은 느낌을 남겨주었다.
나도 지금 환해지고 싶다고, 따뜻해지고 싶다고 생각해보며...

 

    아무것도 필요 없다.
    지금은, 다만 환해지고 싶다.
    따뜻해지고 싶다.
    내 맘 속 얼룩들을 쓸어낼 빗자루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름에서 홀연히 벗어난 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