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을 던져오는 단편소설집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은
일본의 나오키상 수상이력을 가진 인기 여성작가 4인이 각각 다른 슬로푸드와 소울푸드를 찾아
유럽여행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음식과 치유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작가라고는 '에쿠니 가오리'가 유일했고, 그래서 이번 테마 소설집을 통해 다른 3명의
일본 여성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설레임과 기대감이 남달랐다.
얼마나 다른 자신만의 색깔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을런지.

1. 신의 정원 - 가쿠타 미츠요 / 스페인의 바스크(Basque) 그리고 차콜리와 콩수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상관없이 축하연이라도 열듯 식사모임을 갖는 가족들의 변함없는 행동방식,
그런 가족과 친척들이 늘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압박감 때문에 바스크를 벗어나고 싶었던
'아이노아'.
아버지의 특별 요리는 여전했음에도 어딘지 낯선 분위기의 식사모임이 마련된 어느날, 알고 보니
그것이 어머니의 위암 발병을 모두에게 전하게 위한 자리였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난 그녀는 대학진학과
함께 마침내 바스크를 떠나게 되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2. 이유 - 이노우에 아레노 / 이탈리아의 피에몬테(Piemonte) 그리고 미네스트로네.
고등학교 교사였던 '카를로'와 제자였던 '알리다'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알리다가 20살이던 그때 카를로는 이미 50살이었고, 이제 14년이 흘러 카를로는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상태.
스무살의 그녀는 생각했었다.  이건 내가 '일으킨' 일이 아니라 내게 '생긴' 일이라고.
다만, 10년 후쯤이면 카를로의 눈이나 다리가 나빠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노라고,
하지만 10년 후는 아직도 한참 있어야 온다고 생각했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나를 쓸쓸하게 했다.

3. 블레누아 - 모리 에토 / 프랑스의 브르타뉴(Bretagne) 그리고 짭짤한 메밀 크레이프.
인연을 끊고 지내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6년만에 귀향길에 오르게 된 요리사 '장'.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해 먹는 거라고 생각하는 버로우 일가의 일원인 그는 부담스럽고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그 속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직장을 얻었다.
갈수록 사이가 멀어져만 가던 어머니와 장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 건 바로 '크레이프' 때문이었는데...

4. 알렌테주 - 에쿠니 가오리 / 포루투갈 알렌테주(Alentejo) 그리고 당밀과자.
"나는 속 좁고, 편협하고, 어둡고, 질투심 많은 루이스다."라고 인정하는 '루이스'와 바람둥이 '마누엘'.
만난 지 4년 반, 함께 산 지 2년 반이 된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으니, 루이스는 요즘 마누엘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고, 마누엘은 루이스가 자기를 속박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게이임을 숨기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상대방을 소개할 때는 내 친구 마누엘,
내 친구 루이스라고 말한다고.
그리고 함께 떠난 여행,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해낼 수 있을까.

동일한 소재에, 여성의 감성이 묻어나서일까.
한 사람의 소설이라고 해도 될만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단편들.
다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고즈넉한 유럽의 시골마을로 달려가 책에 언급된 그 음식들도 맛보고,
유유자적하며 시골길을 거닐어 보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들.

"내 생각에 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행위다.
아무리 섹스하는 사이라도 별개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매일같이 똑같은 음식을 똑같이 몸 속으로 집어넣는다는 행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라고 <알렌테주>에서 에쿠니 가오리가 정의했던 그 것.
음식이란 그런 것이리라.
'식구(食口)'라는 말처럼 음식을 말할 때 '가족'은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며, 그래서 엄밀하게 말한다면
4개의 단편이 모두 가족을 말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신의 정원>과 <블레누아>는 특히 그러했다.
남녀의 사랑을 여성의 입장에서 털어 놓은 <이유>, 그리고 남자들의 동성애를 여성의 감성으로 그려낸
<알렌테주>까지, 소설집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은 그렇듯 소소하고 따뜻하다.
단지 내 마음에 걸리는 한 사람 <이유>의 알리다, 그녀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