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함정'에 소개되었던 책이다. 인도 작가의 책은 별로 접해보질 못해서 생경한 느낌이었다. 책을 펼쳐보니 요즘 출판되는 여타의 책보다 활자가 작아서 가독성이 살짝 떨어졌다. 그래도 내용 만큼은 흥미진진해서 손에서 놓고싶지 않을 만큼 끌림이 있었다. 가끔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도를 만나보긴 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를 배경으로, 인도인의 삶을 다룬 책은 처음 이었다. 신선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던 인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어서 조금 놀랍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발람'. 그는 카스트 중 '할와이'....과자를 굽는 계급에 속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인력거꾼으로 전락해 있었다. 학교도 마치지 못했으며 일찍부터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할머니와 거래아닌 거래로 운전을 배우게 되었고, 아쇽이라는 주인을 모시게 되었다. 아버지는 인력거꾼으로 살다 폐결핵에 걸려 치료한번 받지 못하고 죽었고, 할머니는 발람이 벌어들인 수익의 거의 전부를 착취해 갔다.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발람은 자신이 모시던 주인 아쇽을 죽이고 그의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발람은 방갈로르에서 그 돈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성공했다.

 

책은 '발람'이 중국의 '원지아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발람은 총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줌으로써 인도의 실상을 사실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인도를 바라보며 품었던 막연한 그 감정들이 상당히 미화되어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한번쯤 인도를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도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자비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간디와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모두 평화롭고 깨달음이란걸 얻기 위해서 정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스티브 잡스'도 그런 이유로 인도 여행을 했었다고 자서전에 적고있다. 그러나 책 속에 그려진 인도의 모습은 부정부패가 팽배해 있고, 1%가 99%를 지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을 볼모로 잡고있는 1%에게 끊임없이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인도의 무수히 많은 99%는 1%를 위한 삶을 살아 간다. 뼛속까지 그들의 종이 되어 살아 간다. 더욱이 같은 입장의 하인들도 서로 위하고 보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밟고 일어서려 한다는 것이 가슴아팠다.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지주들은 늘 하인들의 가족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혹여라도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면 그 댓가를 그 가족에게 묻기 위해서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그의 가족들을 묶어 두는 것이다. 그 가족이라는 볼모가 그들을 1%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원천인 것이다. '발람'이 자신의 주인인 '아쇽'을 죽이고 도망을 치기까지 끊임없는 갈등과 번뇌로 괴로워 했었다. 그의 행동이 불러올 재앙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족들이 지주에게 보복성 죽임을 당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발람은 아쇽을 죽임과 동시에 자신안에 잠재해 있던 '화이트 타이거'를 끄집어 내 가족이라는 끈에 묶여 갇혀있던 닭장같은 99%의 삶 속에서 용감하게 뛰쳐 나온 것이다. 한 세대에 딱 한 번만 나타난다는 동물 '화이트 타이거'처럼...

 

이 책 한권으로 우리는 인도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언젠가 그들도 카스트 제도라는 두꺼운 벽을 깨고 밖으로 나올 것이다. 신부의 지참금 제도도 사라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싶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발람'처럼 닭장 같은 그 삶을 뚫고 나왔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리고 문득 나를 돌아다 본다. 내 삶 속엔 그런 닭장이 없는지, 보이지 않는 관습이라는 닭장 속에 날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은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 내 꿈을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되뇌어 본다.

 

인도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여행하기 전 인도에 대해 알고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화려한 여행지에 대한 자료들을 접하기 이전에 이 책을 통해 인도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관광객들을 위해 깨끗하게 치워두고 꾸며둔 인도 말고, 진짜 사람냄새가 나는 인도를 돌아보기 위해선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나는 여전히 인도 여행이 하고 싶다. 특히 발람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싶다. 가야지역의 락스만가르부터 단바드, 델리, 방갈로르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