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전체(256)

오, 내 아내의 든든한 치마폭 (187~190페이지 발췌편집)


가정에 대한 책임감에 있어서도, 홍량 씨는 남다르다.

외국계 회사의 지점장이라는 것이 남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받아야 할 실적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중압감으로 원형탈모증이 생겨도 가족들에게 내색 한 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이다.

자기만 바라보는 착한 아내와 해맑은 아이들 앞에서 차마 힘들다는 말은 못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는데 귀농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더란다.

그래서 포도 씨 뱉듯 툭 하고 내뱉었다.

"우리도 시골 내려가 살까?"

말해놓고 아차 싶었단다.

’아이들 커가는데 무슨 무책임한 소리냐’는 면박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아내가 하는 말,

"다 행복하자고 사는 건데 어디라고 못 살겠어요? 강화도는 어때요?"

설령 아내의 대꾸가 빈말이었다 해도, 무조건 자기를 지지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에 홍량 씨 감동 먹었다.

"살다 보면 여자들이 오히려 참 단순하게 결론을 내려. 정말 대단한 것 같아."

감동 먹은 홍량 씨가 한 말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한번은 믿었던 사람에게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적이 있다.

호형호제 하던 사람이 자기만의 입장을 들이대며 마치 철천지원수의 모습으로 막말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미웠고 동시에 나를 자책했다.

사회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주 두어 병을 비우고, 갑자기 몰려드는 서러움과 이 불안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에 집으로 문자를 쐈다.

"어떤 나쁜 인간이 나를 가지고 놀았어."

역시나 보내놓고 나서 후회했다.

’그러게 사람 너무 믿지 말랬잖아’하는 타박이 돌아올 게 뻔해서였다.

그런데 잠시 후 ’띵똥’하고 전송된 문자.

"어떤 미친놈이야? 속 많이 상했겠네. 그래도 술 많이 마시지 마."

바퀴벌레 한 마리 못 잡는 여자에게서 온 과격한 문자를 본 순간 거짓말처럼 외로움이 다 사라졌다.

인삼, 산삼 먹은 것보다 더 큰 힘이 생기더라.

이 세상에 누군가를 함께 욕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무한한 동지애를 느끼며

그 문자를 지우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함에 넣고 다녔다.

힘든 일 있을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보면서.


그럴 때 보여주는 아내들의 단순 명료 해법은 듬직함을 넘어 위대함마저 느끼게 한다.

점점 더 생각이 복잡해지고 우유부단한 도망자가 돼가는 남자에 비해

이 여자들은 얼마나 담백하고 시원시원한가.

그렇지 않아도 여성 호르몬이 증가해 사소한 것에도 울컥하는 사내들은,

어느 순간 거인처럼 믿음직해진 아내를 보면서 그녀들이 입고 있는 넓은 치마에 파묻혀

자장자장 꿀잠 한숨 자고 싶은 것이다.



이 포스트를 스크랩하고 댓글을 달아주세요. 
추첨을 통해 포스트 당 1분께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를 선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