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 지 한참 후에 책으로 다시 만나니 색다른 느낌.....
왜 유하감독이 이 책을 읽고 영화로 만들고 싶었을지....미루어 짐작되는 책입니다. 원작은 <얼어붙은 송곳니>지만 ‘짐승의 울부짖음’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 울림이 마음에 들어 <하울링>으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책을 원작으로 했지만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나 영화 등은 완전히 다른 창작품으로 원작자들은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신의 손을 떠나 새롭게 창작된 작품으로....영화에 끌려서 책을 읽었고 결말과 펼쳐지는 과정은 비슷한 부분도, 약간 다른 부분도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늑대개 질풍이의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특히나 범죄자를 살인으로 복수하는 것에 대한 생각과 그 복수의 수단으로 말 못하는 동물을 이용하는 사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철저한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수행하는 늑대개 질풍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함께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과는 다른 시작, 한 남자가 갑자기 화염에 휩싸이는 건 똑같지만 차 안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벨트에서 발화된 화재로 사망합니다. 지문채취도 불가능한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채.....터무니없이 부족한 단서로 수사진들이 힘든 수사를 펼치고 있는 중 평범한 회사원이 큰 들개에게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뒤이어 주부까지 연쇄적으로 공격당하면서 그 범인으로 늑대개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그 수사의 일선에 있는, 차갑고 메마르면서도 형사로서의 직감과 능력이 뛰어난 여형사 오토마치 다카코의 시선으로 펼쳐집니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적어도 방해는 하지마라" 형사라는 견고한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형사로 인한 오해와 편견, 파트너 형사에게서조차 소외감을 느끼는 여형사의 고단함과 심리묘사가 잘 드러납니다. 범인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는 책이지만 질풍이와의 강렬한 대면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어우러진 추리소설은 표면적으로만 만났던 영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연결짓게 합니다.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 다키자와 형사와의 동행으로 처음에는 삐걱대지만 어느새 서로를 인정하는 동료로 발전하는 수사과정과 고단하고 쉼없는 형사들의 고충,  타인의 사건만 쫓아다니느라 정작 자기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챙기지 못하는 경찰들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인상깊은 건 질풍이의 마지막 질주, 영화를 보면서도 여형사인 이나영과 질풍이의 한밤
질주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책에서도 그렇군요. '원래라면 광대한 땅을 자유롭게 달리며 살 동물이 이렇게 인간이 많고 흙내조차 나지 않는땅으로 끌려와 대체 어디서 숨을 죽이고 있을지 생각하니 애처로운 기분마저 들었다.' 형사들 틈에서 아니 사람들 틈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자신과 어쩌면 비슷한 외로움을 안고 달릴지도.....
"진짜 가족으로서 충분한 애정을 쏟아 주고 신뢰도 얻으면, 원래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개니까 대단한 힘을 발휘할 겁니다. ...자존심도 강하고 또 경계심도 강한 동물이니까, 절대적인 신뢰관계로 맺어진 상대외에는 마음을 열려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는 질풍이, 죽임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질풍이의 고귀함에 배신을 밥먹듯 하는 인간의 추악함이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여형사 오토미치 다카코 시리즈로 단편과 장편으로 나왔고 이 책은 첫권이라고 하는군요.
계속되는 그녀의 질주를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