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묻지 않아도 사람들이 제일 가기 싫은 곳 중 하나가 병원일게다. 병원을 떠올리면 두려움과 걱정이 먼저 떠오르기에.....
제목의 낯선 용어 '카르테(Karte)'는 환자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진료카드를 말한다. 의사하면 진지하게 청진기를 들고 냉철하게 메스를 드는
흰가운의 모습이 먼저 연상되는 내게 현직 의사가 소설을 썼다는 것부터가 신선한 충격을 준 책 '신의 카르테'
읽고나서는 따스한 훈기가 남는 책이다.

만성의사 부족에 시달리는 시골마을 지방병원, 잠은 커녕 결혼기념일 축하메일 하나 보낼 여유없는 긴박한 응급실에서 연속 35시간째
근무중인 고달픈 내과의사와의 첫 만남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책 속의 5년차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는
이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웃게 만드는 별난 의사선생님이다. 턱없이 모자라는 시골병원의 의사 수를 반영하듯 매일 쌓여있는 카르테
하지만 괴짜 의사 선생의 카르테에는 환자들을 대하는 진심이 함께 담겨있었다.
"앞으로 반 년 남았다고 합니다. 치료법은 없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하며 지내라고 하더군요."
수술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보낸 구리하라 의사에게 돌아온 대학병원 의사의 냉정한 답장
그 두 병원의 의료기술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시설의 열악함에도 희망을 주는 의사와 화려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포기라는 말을 아무 망설임없이 말해주는 의사라는 큰 차이가 있을 뿐......
대학병원의 의사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 '침대 위에서 안정해야 하는 위험한 상태인데 몹시 추운 옥외로 외출을 허가하고
소화기 출혈이 있는데 본인이 먹고 싶다는 카스테라를 사 오고 갑자기 악화되는 상황에서 수혈도 하지 않고 지켜봤던 것....'
눈을 감은 환자의 손을 잡아주며 "수고했어요" 라고 따뜻하게 말하는 의사
환자들의 중압감과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카페처럼 분위기를 바꾼 이색병원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 시설보다 환자들에 대한 세심한 마음이 먼저 고마웠던 기억이....
임종하는 환자가, 그리고 떠나보낸 가족이 "선생님과 만나게 돼서 다행이었다""덕분에 행복했었다." 고 말하는 의사
죽어가는 환자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의사가 얼마나 될까?
차가운 흰색시트와 소독약 냄새가 떠오르는 아픈 환자들로 가득한 차디찬 병원에서 이런 따스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니...
3시간 기다림 끝에 3분 진료라는 말의 종합병원 진료가 의미하는 것처럼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지극히 형식적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말기암환자 아지미씨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해 준 이런 따스한 의사가 어딘가에 있을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이런 진심어린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있으리라 믿는다.

묘한 뉘앙스의 언어반전이 톡톡 살아있는, 괴짜 의사선생 구리하라 이치토
의학이라는 이름의 정과 망치를 사용해 병마라는 흙에서 진정한 생명의 형상을 조각하고자 하는,
환자들 뿐 아니라 아내, 동료, 이웃까지....'인력(引力)의 구리하라' 라는 별명처럼 모두를 끌어당기며 무한한 사랑을 공유하는 의사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작 가까운, 발밑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라고 말하는 진정한 의사와의 유쾌하고 따스한 만남이었다.
8월에는 영화로도 우리와 만날 수 있을거라고 하는데 따스한 감동과 웃음을 주는 이 시골병원 의사와의 스크린 만남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