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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가루가루씨는 벽을 통과하는 대단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소박한 사람이다. 그런 그를 대도로 변화시킨 것은 신임 과장으로 부임한 레퀴예라는 상사다. 가루가루는 새로 부임한 레퀴예가 일으키는 변혁의 조류를 타지 못하고 익사할 위기에 처한다. 그는 지나치게 옛 것을 숭상하는 고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벽을 통과하는 전대미문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여 레퀴예 과장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깨어난 그의 자아가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하게 살 수 없다고,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그를 종용한다.

도둑질로 명성을 얻었지만 교도소장의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사건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명성을 버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그의 고귀한(?) 성품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던 옛 것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사람 하나를 정신병자로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명성과 욕구를 내팽개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그는 엄청난 자질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에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데다가 세상의 흐름 또한 타지 못하는-레퀴예 과장의 말 그대로- 추저분한 퇴물에 허드렛 물건일 뿐이다.

그런 그가 밴댕이 소갈딱지의 아름다운 마누라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벽을 통과하여 그녀가 갇혀 있는 집으로 가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그는 예전 그가 처음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닌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의 능력이 꺼림칙하게 느껴져서(이 얼마나 모범적인 자인가) 의사에게 처방받아 온 알약을 두통약으로 오인해서 먹고, 의사의 처방대로 무리하게 체력을 소모한 결과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담벼락 속으로 들어간 그 때 벽을 통과하는 능력이 사라져 버리고 영원히 담 속에 갇히게 된다. 퇴물에게 알맞은 결말이다.

짧게 끝나버린 사랑과 찬란한 인생 행로의 종말을 한탄하며 슬피 우는 소리? 이것은 틀림없이 비꼬기 좋아하는 마르셀 에메의 반어법이다. 그는 처음부터 레퀴예의 말대로 성실하기만 한 추저분한 퇴물에 불과했고 잠시 잠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보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일탈을 꿈꿨지만 자신의 고매함을 지키고자 하는 퇴물 근성에 다시 주저앉아버린 어쩔 수 없는 얼간이일 뿐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 뻣뻣한 담 속에서 화석이 된 채 영원히 추저분한 퇴물로서 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