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귀신의 소원 (경상도 아랑각 ) -네번째 이야기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젊은 부사는 관가 앞에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라고 했어. 그러자 어디선가 하얀 나비 한 마리가 훨훨 날아왔어. 나비는 마을 사람들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험상궂게 생긴 어떤 남자의 머리에 앉았어. 그 남자는 바로 주기였어. ‘저놈을 당장 포박해라! 살인죄로 엄벌하리라!’ 젊은 부사는 주기를 잡아 심문을 했어. 주기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끝까지 잡아떼더구나.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그러자 부사는 이곳 대밭으로 와서 땅을 모조리 파헤쳐 내 시체를 찾았단다. 내 시체는 죽은 지 오래됐지만 한이 맺혀서 조금도 썩지 않고 그대로였어. 내 시체를 보자 주기는 그제야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하고 말았지. 젊은 부사는 주기를 사형에 처하고 내 원수를 갚아 주었단다.”

“아! 결국 그렇게 된 거였구나!”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너무 불쌍하게 여겼어. 내 죽음을 기리기 위해 내가 죽은 곳에 아랑각이란 비각을 지어 주었지. 그리고 해마다 음력 4월 16일이면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낸단다.”

아랑 누나는 소매로 킁, 하고 코를 풀어 닦았다.

“해마야, 이제 내 소원 들어줄 거지?”

“무슨 소원이요?”

“누나만큼 예쁜 참빗 사 주는 거.”

“아, 그거!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단 말이에요. 또 50점 맞으면 어떡해요?”

“야! 내 성격 몰라? 나, 엄청 끈질기거든. 내 말 안 들어주면 밤마다 계속 나타날 거야. 부사들한테 나타난 것처럼!”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나는 포기했다. 한편으로는 아랑 누나가 불쌍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잠이 부족했던 나는 빨개진 눈으로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 밀양이 멀어요?”

“갑자기 왜?”

식탁에 앉은 나는 된장찌개를 숟가락으로 뜨면서 말했다.

“밀양에서는 아랑 누나 아니, 아랑 귀신을 위한 제사를 지내면서 큰 잔치를 벌인다고 해서요. 저도 한번 가 보고 싶어요.”

“해마 너 요즘 사회 공부 정말 열심히 하는가 보구나? 기특한걸? 밀양 아랑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문화제라서 가 볼 만할 거야. 어디 보자…….”

아빠는 달력을 보면서 날짜를 셌다.

“마침 이번 주말에 아랑제가 열리는구나. 같이 한번 가 보자.”

나는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하늘은 티 하나 없이 파랬고, 공기는 상쾌했다.  오후에는 인사동에 들러 예쁘고 고운 참빗을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춤을 추며 나를 따라왔다.

                                                

       귀신들의 지리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