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귀신의 소원 (경상도 아랑각 ) - 두번째 이야기 

누나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더니 강제로 내 새끼손가락을 걸고는 세게 흔들었다. 아파서 손가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좀 무서운 얘기니까 이불 쓰고 들어.”

누나가 코를 후벼 파며 말했다.

“누나, 뜸 들이지 말고 그냥 말해요. 빨리 안 하면 자 버릴 거예요.”

“무서워서 못 잘 걸. 울지나 마라.”

누나는 긴 머리카락을 얼굴 앞으로 내리더니 흔들흔들 흔들었다. 그러자 머릿속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랑 누나는 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누나가 내 몸속으로 쏙 들어왔다.

“누나, 빨리 나와요. 무슨 장난이에요?”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며 짜증을 냈다.

“이렇게 해야 직접 체험하듯 보고 느낄 수 있지. 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귀신이 된 이야기, 이제부터 실감나게 보여 줄게!”

갑자기 눈앞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주변이 회오리치면서 나는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아아악!” 



 

가만히 눈을 떠 보니 주변에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저 멀리 강가 위에 기와를 얹은 누각이 있었다. 바람이 불자 대나무들이 흔들리며 와사삭 소리를 냈다.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누나! 아랑 누나!”

누나는 보이지 않았지만,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조선 시대야. 여기는 경상남도 밀양이고. 우리 아버지는 밀양 부사였어. 나는 우리 아버지를 따라 밀양으로 이사를 왔지.”

“부사가 뭐예요?”

내가 물었다. 아랑 누나가 대숲 밑에서 서서히 올라왔다. 진짜 귀신 같았다.

“부사도 몰라? 으이구. 그러니까 사회 50점 맞지! 부사는 그 지방을 다스리는 높은 관리란 말이야.”

아랑 누나는 내 옆에 철푸덕 주저앉아서 맨발에 묻은 흙을 툭툭 털었다. 터프했다.

“내 원래 이름은 윤동옥이야. 마을 사람들은 나를 너무 아름답다고 아랑이라고 불렀지. 너도 내 미모 잘 알지? 내가 열아홉 살이 되자 밀양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했어. 내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온 동네 청년들이 나를 보려고 목을 길게 뺐다는 거 아니야. 그래서 다들 목 디스크에 걸려서 고생을 했다나 뭐라나.”

“어이구, 누가 공주병 환자 아니랄까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날 좋아하던 많은 남자들 중에는 주기라는 청년이 있었어. 주기는 관가에서 심부름을 하는 노비였어. 주기는 나를 짝사랑했어. 하루 종일 내 생각만 했을 정도였달까? 하지만 주기는 신분이 낮아서 내 앞에서 말조차 붙일 수 없었지. 주기는 날마다 끙끙 앓다가 결국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어.”

“그게 무슨 방법이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나를 키운 유모가 있었어. 나는 유모를 어머니처럼 따랐고, 유모가 하는 말이면 뭐든 믿었어. 그런데 주기는 그걸 약점으로 잡고 유모를 이용하기로 한 거야. 유모네 집은 몹시 가난했어. 그래서 주기는 유모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꼬드겼지. 날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말이야. 처음에는 유모도 거절을 했지만, 자꾸 많은 돈을 내미니까 마음이 흔들렸어. 한 번쯤 만난다고 큰일이 날까 싶었던 거지.”

“그래서 주기를 만나러 갔어요?”

너무 궁금했던 나는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날은 아주 큰 보름달이 떴더구나. 달빛에 비쳐 밤인데도 세상이 환했지. 유모가 나더러 달구경을 가자고 했어. 저쪽에 흐르는 남천강에는 영남루라는 누각이 있는데,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 나는 유모랑 같이 가니까 안심하고 따라갔어. 영남루에 올라 보름달 구경을 하면서 나는 소원을 빌었단다. ‘달님, 달님, 제발 천생연분 멋진 신랑을 만나게 해 주세요.’ 하고 말이야. 그런데 옆에 있어야 할 유모가 어디론가 사라진 거야.”

“사라져요?”

“응. 날 혼자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가버린 거야. 그게 다 주기란 놈의 꾀였지. 나는 유모를 찾으며 두리번거렸어. 그런데 어둠 속에서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성큼 나타난 거야.”

“주기였구나!”

내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그래. 주기가 나타나서는 음흉하게 웃는 거야. 난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려고 했어. 그런데 주기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 거야. 난 숨도 쉴 수 없었어. 주기는 내게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손을 떼었어. 주기가 말하더구나. 자기는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면서 앞으로 자기를 계속 만나 달라고 말이야.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했어. 결혼도 안 올린 처녀가 남자를 만나는 건 안 되는 일이잖아. 그런데도 주기는 계속 애원을 하면서 매달리더구나. 그래도 난 결코 물러나지 않았어.”

“주기가 몹시 화가 났겠어요?”

“그래. 주기는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더니 자기를 만나 주겠다는 약속을 안 하면 여기서 죽여 버리겠다고 했어. 난 너무 무서워서 목구멍으로 말이 안 나왔어.”

“거짓말로라도 만나 주겠다고 하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집으로 돌려보내 줬을 지도 모르잖아요.”

“나도 그럴 생각이 있었지. 이 위기만 넘기면 아버님께 말해 저놈을 혼내 줘야겠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도저히 거짓말을 못하겠더구나. 거짓말을 하면 내가 저놈한테 지는 것이란 생각이 들자 오기가 생기는 거야. 그래서 끝까지 버텼어. 오히려 내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지. 네 이놈, 어디 죽일 테면 죽여 봐라!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만…….”

아랑 누나는 그 순간 고개를 푹 숙였다. 아랑 누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주기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더라고. 그리고는 내 목덜미를 푹, 하고 찔렀어. 뜨거운 불덩어리가 들어오는구나 싶었단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어.”

아랑 누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여기 보이지? 얼마나 아팠겠어?”

“주기란 놈은 내 숨이 끊어진?어.”

“어디요? 어디에 묻었어요?”

나는 꺼림칙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세 발, 오른쪽으로 두 발, 뒤로 다섯 발.”

나는 아랑 누나가 시키는 대로 했다.

“여기에 묻혔어요?”

나는 꾸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니. 너 지금 똥 밟았다.”

“웩! 내가 장난치지 말랬죠!”

나는 신발을 벗어 바닥에 마구 문질렀다. 구린 똥 냄새가 코를 훅 찔렀다.

“아무튼 주기 얘기나 마저 들어. 주기는 날 죽였으면서도 조금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더구나. 그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갔어.”

“정말 잔인한 놈이었군요. 누나가 자기 말을 안 들어 주면 죽이려고 처음부터 계획을 세운 것 같아요>

나는 나뭇가지로 신발 사이에 낀 똥을 파내면서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귀신들의 지리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