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매번 늙음을 탓할 때마다 엄마한테 등짝을 얻어맞기는 하지만 나는 이거 하나는 자부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 못지않게 나는 끝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는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왜인지 다른 사람을 띄워주기 위한 ‘방석’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얼마나 많은가. 항상 생글거리면서 장난치지만 내 속에 담긴 슬픔을 보는 사람은 몇이나 되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두어야 한다. 나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무엇이 될지 고민하는 시기고, 잘 되지 않아서 고민한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지금부터 해야지, 우리가 사회를 움직이는 세력이 되었을 때 생각하면 늦다) 나만의 견해를 펼쳐보기도 하는 시간들을 나는 겪어오고 있다. 모든 어른들이 그러했듯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백전 불태하지 못하고 매번 후퇴를 거듭하는 미성숙한 자아다.

  역사소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이 소설은 특히나 묘사에 무게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무엇이 어떻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위대하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되겠다. 생각을 하고 이를 글로 옮기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얼마나 책 속의 화자가 되느냐에 따라서 독자들이 받는 느낌은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소현 세자가 될 수 있었다. 조선의 세자라는 호칭을 받고서도 결국 청에서 볼모로 잡혀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외면받기를 선택되었던 인물이다.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이 모든 결과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조선의 적은 그들이었으나 그들의 적은 조선이 아니었다. 조선의 적은 청이었으나 청은 적은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생각하기에도 너무 작은 나라라 그럴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이자, 훨씬 더 넓은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왜 이러지 못했는가? 서로 서로가 적이 되어서 왜 공동의 적에게 빈틈을 보였는가? 내 목숨을 살리지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대신 바치는 게 황제 펭귄과 다를 바가 없다. (바다 속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서 포식자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옆에 동료를 툭 쳐서 그것이 생사를 통해서 입수가 결정되는 게 황제 펭귄이다) 왜 다른 사람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콩고물이라도 하나 떨어지기만을 바랐는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렸다. 이 밖에도 우리는 수많은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박고 나의 목숨을 구걸해야 했을 것이다. 도대체 시발점이 어디인가. 만약에 그것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뿌리 채 뽑아내 버리고 싶다.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동안 지켜왔던 권위와 명예를 위해서는 나라를 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도대체 누가 했는가? 조금만이라도 이해심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아무리 가정을 해봐도 바뀌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예 하지 않은 게 더 편하다.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면서 시작한 청의 이 사람은 너무 일찍 깨달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이길 수 있느냐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살아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젠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뿐. 지금 현실에도 해당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관적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머리 속에 이를 박아 놓고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등은 1등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바쳤다. 혹은 다른 것이라도(그 당시에는 포기할 수 없었던 귀중한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니 유연하게 생각하자. 당신은 무엇을 바쳤는가. 무엇을 내놓고 그 고귀한 권리를 얻지 못했다고 포기하고 불평하는가. 내가 이 자리에서 머물고 있는 대도 무엇인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누구보다도 실천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매번 흐려지는 다짐을 잡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새롭게 생각하는 나의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르는 것을 떨어지기 위해서였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영원한 권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원한다는 건 세상에서 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그리 거대한 것을 요구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난 후에 자만하는 모습은 누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짐한다. 이미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비위를 맞추는 것도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이제 당신에게 도전하겠다. 숨 막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는 어둠을 이겨낼 준비가 되어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