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삐아를 찾아서> / 정제순 지음 / 조이웍스  
 

   이것은 일종의 간증이라기보다 성실한 보고서다. 지난 20여 년간의 선교사 행적을 담은 이 책은 영웅적 전기도, 드라미틱한 자서전도 아니다. 사람의 잘난 모습이기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록문학이다. 바깥으로는 한국교회 선교 역사에 기념비적 의미를 담을 만한 행적을 이루었고 그 내용들을 소상히 담아내었기에 얼마든지 때깔나는 훈장을 받기 충분하다. 안으로는 저자의 절제된 고백과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글쓰기로 만들어진 좋은 글모음이 읽는 이의 마음 밭에 착착 가라앉는다. 사람보다는 온 열방의 로삐아이신 예수를 더 찾게 만든다. 이 선교 보고서는 우리 시대 신자들과 선교를 꿈꾸는 주의 제자들에게 훌륭한 선교 교과서가 될 것이다.

   실상 이렇다 할 내공이 없어도 얼마나 많은 책들이 휘황한 영업 전략과 금빛 포장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어당기고 분에 넘치는 베스트 반열에 오르는가? '긍정'이니 '희망'이니 하는 솔깃한 주제들 따위가 이 시대 많은 이들의 허상을 땜질하는 시대다. 희석화한 사이비 구원과 무뎌진 십자가가 한국교회 안에 참 많이 뿌려졌다. '소금' 대신에 '설탕' 복음이 우리 시대 기독교를 당뇨 환자로 만드는데다가 너무 심각할 정도라 갖가지 합병 증세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소위 간증일수록 예수그리스도보다는 자신들이 더 드러나 보이는 뒤틀린 신앙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로삐아를 찾아서>는 참 귀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실로 찾아 나서게 하는 멋진 책이라 여겨진다.

   메께오의 세종, 정제순과 마우니 마망아

   저자 정제순 선교사는 파푸아뉴기니 메께오 부족들과 함께 십수년을 살면서 그들의 언어와 삶을 배우고 그들에게 문자를 개발해 주며 그들 언어 문자로 성경을 번역했다. 1999년 '마우니 마망아 이방아(새 생명의 말씀)'라는 신약성경을 완전 번역 봉헌하며, 지금은 한동대학교에 아릴락을 세워 후배 선교사들을 훈련하는 일에 또 충성하고 있다. 

   그가 선교사로 파송되어 성경을 번역하고 지금에 이르는 20여 년의 과정을 담은 <로삐아를 찾아서>는 오늘 우리 예수를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선교 현지에서 일어났던 생생한 사건과 감동,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안겨 주지만, 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글과 문장 속에서 독자는 제자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각자의 삶의 현장, 선교 현장에서 우리 자신들은 참으로 로삐아를 찾아가는 인생을 걷고 있는지를 내내 묻게 한다.

   저자의 글에서 좀처럼 덧칠한 수식어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찾아볼 수 없다. 온전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누구든지 자신의 행적을 절제하며 보다 객관화하여 드러낸다는 것은 보통 쉬운 게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진가를 자랑스레 이야기하고픈 게 어쩌면 당연하다. 게다가 "성경 번역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을 제쳐 놓고 달리 누구를 말할 수 있으랴"라고 치켜 세움을 받고, 결정적으로 소위 성공적인 선교 사역의 결과물도 이루었던 바에야 더욱 그 내면에서 숨길 수 없는 자랑의 욕구와 드러냄을 자제하긴 쉽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다른 분들을 매혹시킬 만한 글재주 역시 갖고 있지 못하다"거나 "지극히 평범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것도 없다"라고 고백하는 것에서 저자가 얼마나 모든 일에 로삐아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읽게 한다. 그의 책 내내 실제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기대를 채워 주고 영웅주의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표현 따위는 잘 보이지 않고 그저 어떻게 하나님이 그곳 부족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며 인도하셨는가를 마치 제3자의 시선으로 담담히 다큐를 찍어 내듯 써 낸 것을 본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인데 우린 너무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특히 구약의 역사적 이야기나 인물들의 활동을 우리는 너무 극적으로 영웅주의적 사람의 관점으로 독해한다. 기드온과 300 용사들, 여장부 드보라를 시작으로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등, 그들의 면면은 대체로 영화 속의 멋진 주인공이고, 삼국지의 유비 3형제나 제갈공명이다. 그래서 정작 하나님을 놓치기 일쑤다. 기실 잘 들여다보면 성경은 그들 모두가 얼마나 엉터리 같은 놈들인데, 그들을 얼마나 괜찮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이끄시고 은혜 베푸시는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읽는 이들마다 나 같은 형편없는 인간도 전능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멋진 생명의 사람들로 승리하는 인생으로 역전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게 아니겠는가!

   <로삐아를 찾아서>에도 나온다. 모세 어머니 이름도 모르고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보지도 못한 주제에도 신학생이 되고 선교사로 헌신하게 하고, 그리고 종래에는 다른 부족어로 성경을 번역해 내는 성경 학자요 언어학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이. 날건달 인생으로 어린 시절을 허비하던 이들을 부르시고 그들로 자기 부족어 하나님 말씀을 만들어 가는 일에 참여하게 하고, 이젠 자기들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뿐만 아니라 나아가 다른 부족어 성경 번역 선교사로 세워 주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래서 이 책은 참으로 좋은 교과서적 선교 수기라 평가한다. 선교사들에겐 살아 있는 교과서로, 선교사와 함께 중보하며 협력하는 이들이나 그저 평이한 신자에 불과할지라도 충분히 소그룹 모임에서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참 괜찮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이건 뭔미, 웬 반응과 반추?

   이 책의 특이한 점은 '반응과 반추'다. 몇 개의 주제에 걸친 이야기 말미에 '반응과 반추'라는 일종의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무슨 성경 공부 교재 같다고나 할까. 오랜 시간 선교 현장에서 겪은 통찰력과 경험들을 들려주고, 오늘 우리 시대 살아가는 신자들과 교회 환경 속에서 되새김질하며 보다 성숙한 제자로서 교인으로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하는 숙제들을 던져 준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같이 읽고 토론하는 것은 더더욱 저자의 의도를 잘 받아먹는 좋은 열매가 될 것이다.

   저자는 선교를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지는 동역의 종합예술'이라 정의한다. 우리 교회와 선교 현장을 돌아보면 시사해 주는 바가 큰 메시지다. 독선과 아집으로 오늘 한국교회와 선교지가 어둡기만 하다. 기다릴 줄 모르고 남의 충고 들을 줄 모르고 제 열심(?)만 드러내는 현장마다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있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예수를 이야기하고 예수를 말하나 실상 그 방법적 태도와 삶은 적지 않게 세상의 것으로 채우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돌이켜야 할 것이다. 온 열방의 주인이신 진짜 '로삐아'를 찾아서, 모든 족속과 그들의 방언으로 주의 말씀이 번역되며 그들의 언어로 로삐아 앞에 찬송과 영광이 들려지는 그날까지 이 땅의 모든 신자들과 교회가 함께하며 기다릴 줄 아는 하나님의 미션이 계속되길 기도해 본다. (2009.12.4.뉴스앤조이/김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