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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오늘 한 일을 다이어리에 체크해보며, 항상 한숨을 푹푹 내쉰다. 한 일도 별로 없는데, 난 하루종일 무얼 한거지?! 내일 할 일을 정리해보며, 다짐하고 다짐해보지만- 다음 날이 되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가 게으름이 뚝뚝 뭍어나온다.

그런 하루가 쌓이고 쌓여 시간은 빨리도 지나간다. 추리소설들에 푹 빠져 더위를 승화시키던 여름날이 가고, 이제 내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에는 차가움이 배어있다. 벌써 9월이라고 경악을 했건만, 게다가 이젠 열흘이 더 흘렀다. 올해 나는 뭘 한거지? 지난 몇년간은? 에휴....

1988년 10월 18일, 제프는 아내 린다와 전화통화 도중 갑작스러운 심장통증에 쓰러진다. 그는 죽었다.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이 떠졌다. 다시 그는 살았다고 생각했다. 살긴 살았다. 1963년 5월 6일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는 대학생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리고, 미래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예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예전 삶과는 달리 막대한 돈을 벌었고 사랑하는 딸도 얻었다. 건강도 챙겼다.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는 1988년 10월 18일 같은 시간이 되자, 똑같은 통증을 느꼈고 죽었다. 그리고 1963년으로 다시 돌아갔다.

특정부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

물질적인 성공, 낭만적인 사랑, 아버지로서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냈으나.... 결국 무(無)로 돌아가고 그는 빈손으로 무력하게 홀로 내던져졌다. 최선을 다해 살아도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간은 이렇게 자꾸만 과거로 되돌아가는 걸까? (p.154)

작가는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 걸까?

'전세계 모든 시간여행 소설가들이 오마주를 바치는 전설적인 작품'이라는 설명답게 1986년이라는 출간년도가 믿기지 않는 작품이었다. 10번의 재생(순환)삶을 사는 동안의 이야기를 빠른 전개 속도로 전혀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돋보였다. 특히 여러번 반복되는 삶의 횟수만큼이나, 내가 제프라면 해봄직한 행동과 생각들이 작품속에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어서, 작가가 이 소재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 짐작케 했다.

"항상 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하지만 그 답을 구하려고 기운을 소진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만둔 지 오래예요. 우리가 안고 있는 딜레마는 현상적인 면에서 특수하기는 하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이 직면한 딜레마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요. 우린 이 지구에 살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여기서 살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p.232)

나도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제프가 그 순환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제프가 미래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산다면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답이 맞기 위해서는 제프의 삶을 평가할 누군가, 제프의 삶을 순환하게 만든 무언가가 존재해야 했다. 그럼 지구가 외계인 혹은 신적인 존재의 장난감 공이란 말인가?(책 속에서 이와 비슷한 이론도 제기된다.) 결국 '왜?'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나는 종종 뒤만 바라보며 내 발 앞에 박혀있는 아주 작은 돌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걸 또 한 번 느껴본다.

처음에 그들은 무한한 선택과 기회를 제공받으며 영원히 살 줄 알았다. 그래서 재생 때마다 주어지는 소중한 시간을 비통함과 죄책감,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으려는 헛된 노력으로 낭비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찾아야 하는 답은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었다. (p.419)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자는 시간 줄일 생각하지 말고, 깨어있는 시간이나 낭비하지마!" 역시 선생님은 현명하시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우리의 시간은 짧다. 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