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은 지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술이 사람을 마시듯 살아가다, 그런 삶을 잡아준 엘런과 다시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런 엘런이 '법적인' 결혼과 주인공과의 아이를 원한다. 엘런의 부추김에, 어쩔 수 없이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된다. 자신이 클라인펠터 증후군이어서 아이가 생길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자신에겐 이미 죽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다. 그럼, 도대체 아들 보의 아버지는 누구란 말인가?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주인공 아르민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하는 멍한 상태를 지나, 과거 죽은 아내와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한다. 버스에서의 만남, (지금까지 보가 생겼다고 믿었던)사랑을 나누던 때의 일, 임신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고 축하받은 일, 소소한 여행의 추억들, 아내가 아팠던 때의 일 등등.... 그리고 그런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추억 속에서 떠오른 모니카 주위의 남자들을 의심하게 된다. 모니카의 전 남자친구, 주치의, 직장동료를 차례차례로 의심하며 찾아가는데.... 과연 아르민은 보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데이스의 말이 옳다. 의문을 품고 사는 것보다 답을 얻고 사는 게 더 좋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p.230)

 

과거회상과 보의 친아빠 찾기에 열중인 아르민에게, 친구 데이스는 너무도 이성적인 충고를 해준다. 아르민처럼, 나도 안다. 데이스의 말이 옳다는 것을. 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다고 해서, 그 결과가 알기 전보다 좋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이미??이다.

독특한 소재와 더불어 이 책에 또 하나 독특한 느낌을 부여하는 것이 있다. 책 속 아르민이 과학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교정일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과학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조금 듣고 있다보면 곧 아르민의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아르민이 풀어내는 과학이야기들은 쉽고, 탁월한 비유와 위트넘치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서, (아르민에겐 미안하지만 아르민의 심각한 상황은 잊어버린 채) 큭큭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설마~'하는 내용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을 내면 열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의 아이가 일반적으로 아버지라 생각하고 있던 사람에 의해 태어난 게 아니다. 이 수치는 산업화된 서구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pp190~191)

 

이 통계치는, 사실이 아니길 빈다.^^;
여기에, 아날로그 생활을 좋아하고, '법적인' 혼인관계는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국가가 개입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보가 처음으로 배우는 단어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좋은 아빠인 아르민의 생활과 사고가 세세하게 녹아있어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애초에 마음이 상하고 아프게 되는 것은 모두 언제나 탓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네

 

어쩌면 이 말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한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아르민이 죽은 모니카에 배신감에 치를 떨든, 용서를 하든 결국 문제는, 남아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남겨진 두 사람 보와 아르민, 그 둘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때때로 너무도 자유로운(아르민의 부모들이 '히피같다'고 표현한) 아르민과 모니카의 결혼생활에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인간의 저 깊은 곳에 숨겨진 욕망인 지도 모르겠다. "한번쯤 저질러보고 싶은 어리석고 부조리한 일들이 가득 담겨 있다"라는 아이리시 타임즈의 감상평이, 책을 다 읽고나니 아주 깊이 공감된다.^^ 

+글귀의 출처는 『내 아들의 아버지』(태일소담, 2010, 초판 1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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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