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 혹은 술자리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 그것도 아니라면 취기를 통한 친구와의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나도 술을 결코 싫어하지 않는 이유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습관적으로 잠잘 시간 침대에 비스듬이 누워 책장을 넘길때 내 손엔 포도주나 맥주가 함께하는데, 그때 참 잘 어울리는 책일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길래 '술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444페이지를 채울 수 있을까?" 책 내용보다 작자에 대한 궁금증이 앞섰다.

<술통> 책날개에 실려 있는 그에 대한 소개를 잠시 적어볼까 한다.

"5.16 쿠데타가 일어났던 그해 태어나 지금까지 마흔 몇 해를 엄병뗑 살아왔다. 우신고등학교와 연세대 국문과를 마치고 86년부터 91년까지는 신문(조선일보), 91년부터 98년까지는 방송(SBS)에서 기자로 일하며 먹고살았다. 이후로는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 솔직히 말하면 백수로 산 나날이 훨씬 많은데, 막간을 이용해 방송 PD, 출판사 대표, 여행가이드, 5급 공무원 등으로 밥벌이를 하기도 했다. 잘 팔리지 않는 일곱 권의 책을 냈으며, 잘 팔릴 것 같은 아흔 여섯 권의 책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인지, 책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는가?^^
책날개를 통한 작자 소개만으로 책을 궁금하게 하는 힘, 그것이 장승팔에겐 있다.^^

어쩌면 나는 그의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이력들에 끌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내가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 어느쯤에서 갈피를 못잡고 헤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평범하게 살기'가 참 어려운 세상에서, 난 어느 것이 날 행복하게 할 것인지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책의 조금을 맛 보았을때, 그러니까 그가 내민 술잔을 받아들고 술향만을 맡았을 그쯤..
나는 그를 "이루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세상에 "이루지 않는 사람"과 "아직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루지 않는 일"과 "이루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않는"과 "못하는"은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에선 동일하지만 상당히 다르다.
어떤 일을 하는데 이미 능력은 타고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룰 수 있음에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이루지 않는 사람" 이 있는 반면, 그 타고난 능력이 없어서 그 능력을 쌓기위해  "아직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난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중학교 다닐때까지는 '범생'이었으나 고등학교 이후로 공부를 작파하고, 술에 빠져 살았다 한다.
그러나, 한달 공부로 연세대에 들어가고 그 후로도 신문기자, 방송기자, 방송PD, 출판사대표, 여행가이드, 5급공무원, 작가 이 모든 일들이 그를 거쳐갔다면 그는 진정 타고난 능력자가 아닌가.

그러나 묘하게도 그는 이를 부정한다.
그리고는 내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느릿느릿하게 날 끌어들이며,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술로 풀어간다.
나에게 마치 술을 계속 권하여 내가 취한 틈을 타, "나는 결코 잘난 인간이 아니야~"를 주입시키고 있는 느낌이랄까.
사랑이야기, 학생시절의 이야기. 무전여행다닌 이야기, 군대이야기. 복학하고 난 예비역의 이야기, 친구이야기, 슬픔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술이야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술향기는 비싼 양주의 향기가 아니라, 독한 소주의 향이 난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를 거쳐간 겉만 번지르르한 이름의 일들, 그의 인생이야기에도 독한 소주의 향이 난다.

"나는 완벽한 퀴즈 키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퀴즈 키드란 신동이나 천재소년이라는 뜻이 아니라 '퀴즈에 중독된 단답형 인간'을 가리킨다. 그때 나는 스스로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내 머릿속에 잔뜩 저장돼 있는 것은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 지혜가 아니라 그 흐름의 표피에서 건져 올린 허섭스레기 같은 지식의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P.265)"

그는 말수가 적다고 한다. 실제로 말수가 적을지언정, 그의 글은 정말 일품이다.
맛깔나는 표현력, 그의 글솜씨가 정말 부러웠다.
그의 머릿속 단어들엔 내가 알고 있는 뜻 말고 다른 뜻들이 들어있는 느낌이다

"슬기_인생의 두 가지 기둥인 슬픔과 기쁨을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겪고 나면 생기기 마련인 지혜"(P.284)
그의 머릿속 단어들은 이런 식이다.^^

그의 표현력에 부럽고, 그의 기상천외한 술이야기에 놀라고, 그의 술에 묻어있는 슬픔에 같이 슬퍼하다보면, 나도 이미 그가 내민 술에 만취해 있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담은 그의 한 문장이 날 울컥하게 했다.
"이제 늙으신 아버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드릴 방법이 없어서 나도 가끔 인생에 대해 화가 난다."(P.253)
내가 그의 나이가 되고, 술에 슬픔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저토록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문장을 끄적일 수 있을까.

그의 어릴 적 꿈은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잘팔리는 책을 쓰고 싶다고 한다.
그가 앞으로 세상에게 내밀 독한 소주향 나는 다른 책들을 기대해본다.^^

2007/01/11 

+글귀의 출처는 『술통』(박영률출판사, 2006)이고,
본 포스팅의 글귀와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