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일 뿐이지만, '추리'소설이 출간되었다는 건, 적어도 '중간은 간다'는 거다. 무수히 많은 추리소설들이 쏟아져나오고 그 중 골라 읽게 되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소설류와는 다르게 '읽다가 던질'만한 추리소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더 신기한 건 그렇게 평균치높은 추리소설들이건만 '이거다!' 할만한 추리소설 찾기가 힘들다는 거지만...^^;;;

결론적으로 내게 오랜만에 추리소설 읽는 재미를 안겨다 준 밀레니엄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사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흥미로운 마케팅의 힘도 작용했음을 부정하긴 힘들 것 같다. 10부를 계획하고 집필에 들어갔지만, 3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스티그 라르손("이 시리즈를 읽고 나면 저자의 다른 책을 보고 싶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이미 죽었고, 다른 작품은 없다.")을 부각시키고, "일요일 저녁에는 밀레니엄을 읽지 마라! 뜬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면."이란 낚시문구를 내걸었다. 하지만, 뭐 이 정도의 마케팅은 어느 책에나 흔히 쓰이는 거다.

마케팅의 정점은 바로 차례 왼쪽 페이지에 적힌 문구들이다. '<밀레니엄> 리더스 가이드'라는 반 페이지 분량의 문구 중 특히 눈에 띄는 몇 문장을 소개해본다.
"<밀레니엄 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초반부는 전체 시리즈의 배경 설명이다. 굉장한 복선과 암시들로 독자로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이후 가공할 사건과 한 치의 오차 없는 추리, 전혀 예상치 못한 실마리를 통해 대단원을 향해 질주한다." 
결국, '초반에 지루하지만 점점 재밌어지니 중간에 내던지지 말고 읽어달라'는 거다. 이 문장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흥미가 생겼다. '그래? 얼마나 재밌는데?!' 뭐 이런 심보랄까.

그러나, 나는 너무 머리쓰다 속았음을 밝힌다. 저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탓이다. 초반은 지루하지 않았다. 추리소설 앞부분이 다 그렇듯, 뿌연 안개 속에 사건의 본질은 적당히 감추고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면서 흥미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굉장한 복선과 암시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결론에서 뒷통수맞지 않으려는 내 처절한 노력으로 너무 꼼꼼히 읽었던 게 문제였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범인'은 어딘가 구석에 박혀있어 자칫 놓칠만한 인물이 아니라, 사건의 틀만 보고도 찍어놓았던 내 눈앞에 얼쩡대던 인물이었던 거다. '에휴.... 쓸데없는 거에 너무 집중했어--+' 한숨을 쉬어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듯, 이 소설은 오랜만에 읽은 추리소설다운 추리소설이었다. 직업정신 투철한 기자이지만 여자없인 못사는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거식증환자처럼 비쩍 마른 체격에 여기저기 문신이 엿보이는 여자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1966년 일어난 '하리에트 반예르'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운 문체이건만, 어째서 책에서 눈 떼기가 힘든 건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사건의 결말과 책의 결말이 내 마음에 들었던 탓일까, 평가에 좀 더 후해진다.

각 장 아랫쪽에 나와있는 스웨덴 여성에 대한 통계치를 보며, 얼마 전에 신문기사에서 본 '한 시간에 한 명'꼴로 우리나라에 성폭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통계치가 떠오른다. 책 속 사건은 '해결(?)'이 되었지만, 현실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란 제목을 머릿속에 항상 담아두고 책을 읽는다면, 좀 더 흥미롭고 (몇몇 등장인물들에 대한) 분노가득한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책장을 끝까지 넘기고 나니, 표지가 내게 많은 말을 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하리에트'라는 소녀 한명의 실종사건이 주제인 이 책 표지에 여자들의 머리가 빨간 줄에 꿰여 그려져 있는건지, 배경에 그려진 꽃무늬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러가지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추리소설이었다.

+ 흥미롭게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라면 <로맨틱한 초상>이란 책도 추천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점이나 책 속 어떤 '미친X'의 분위기 탓인지 <로맨틱한 초상>이란 소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