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하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이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왔던 지난 해, 나는 조용히 이 소설을 피해다녔다. 인터넷서점의 판매순위 1위를 굳건히 지킬 때도, 이 소설의 성공에 대해 기사들이 쏟아질 때도, 난 눈길을 돌렸다. 결국 내 손에 들어온 책의 출판정보가 쓰여진 페이지를 보니 '초판 136쇄 발행'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제서야, 와, 내가 참 많이도 피해다녔구나, 실감이 났다.

"너 왜 울어?" , "몰라. 저 사람이 울잖아." 엄마가 놀라 물으면, 난 TV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한다. 억울해서 울면 울었지, '슬퍼선' 울지 않던 독한 기지배였던 나는 고등학교 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렸을 때 못 운 것까지 몰아 울 듯 매년매년 눈물이 늘어만 가더니 이제는 누군가 울면 이유도 모르고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내가, 어떻게 이 책을 내 손으로 잡아 읽을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친구의 결말폭로도 한 몫했다. (이 소설을 추리소설으로 분류하는) 내 친구는 이 책의 결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내게 내뱉었다. "이미 엄마는 죽어 있었어." 기운을 쏙 빼놓을 것이 분명한 소설을, 이미 기운빠진 상태로 잡아들기 싫어서 피해다녔다. 마지막장까지 덮은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내 친구는 이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할 듯하다. (아니면 일부러 내게 결말을 틀리게 알려준걸까.)

출간 후 지금까지 시간을 질질 끌다가, 엄마가 수술을 받기 전에 이런저런 검사로 서울을 왔다갔다하는 요즘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된 건 우연일까 운명일까.

엄마를 잃어버렸다 한다. 지하철에서 아버지가 엄마의 손을 놓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연히 몇 걸음 뒤에서 엄마가 따라오리라 생각하고 지하철에 올랐으나, 돌아봤을 땐 없었다고 한다. 역을 되짚어,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가보았으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잃어버린 엄마를 '너의' 엄마라고, 내게 손가락으로 나의 가슴부근을 가리켜주었다.

너의 엄마는 몇해 전부터 내 생일은 따로 챙기지 마라, 했다. (p.11)

작가가 '너의' 엄마라고 얘기하는 순간, 나는 잃어버린 엄마에게서 우리 엄마의 흔적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아니, 굳이 애써 찾을 필요도 없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도저히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양의 일을 해내는 것도, 아파도 괜찮다 하는 것도, 먹을 것 너무 많이 싸짊어지고 오지 마시라는데도 안 무겁다 하시는 것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 읽는내내 속상하고 속상했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p.120)

이 책은 각 장마다 이야기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 큰 딸이자, 대부분의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하게 될 '너'에서 큰 아들인 '그', 그리고 남편인 '당신'과 또다른 여인인 '나'가 되었다가 다시 '너'로 되돌아와서 끝난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생각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며 엄마를 찾아헤맨다.

모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엄마와 나란히 앉아 본 적이 있다. 엄마를 옆에 두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눈물을 꾹꾹 눌러참으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저 영화를 보며 딸의 입장이 되어있을까, 엄마의 입장이 되어있을까.' 엄마에게 언젠가는 묻고 싶다고 생각한 이 질문의 답은, 어쩌면 결국 물어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난 어른이 되고싶다.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요즘에서야, 난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언제까지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철부지는,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건강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아버렸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만큼 자라고 싶다. "엄마를 부탁해." 이 말을 오빠에게, 아빠에게, 하늘에게 해야만 하는 너무, 늦어버린 순간이 아닌 지금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이 말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해 주어야 하는 말이니까. 철부지 내가, 커버린 나에게.. '엄마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