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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가을이 내게도 살짝 들러붙는 느낌이 들자, 이때다 싶어서 『순수박물관』2권을 집어들었다. 한여름, 그토록 끈적끈적한 찌질함으로 내 마음에 '애처로움'이란 네 글자를 새긴 케말의 사랑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밤의 바람덕인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1권의 끝부분에 퓌순을 찾아 헤매다 결국 찾아내고야 만 케말은 퓌순이 이미 결혼을 했음에 좌절하지만, 퓌순의 선택이 '자신에게 버림받았기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퓌순의 삶 속으로 침투한다.

그건 케말의 억지 합리화만은 아니었나보다. 8년 중 2864일을 퓌순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가족 중 누구도 케말이 찾아오는 의도가 퓌순때문임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케말을 결코 내치지 않고 가족과 손님 사이의 애매함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케말은 퓌순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여 바라는 것 없이 저녁식사를 하러갔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케말은 항상 '빠른 시일 안에' 퓌순이 자신에게로 돌아올 거라는 희망으로 퓌순의 집을 찾았다. 퓌순의 태도가 분명했다면 케말의 사랑은 '스토킹'이겠지만, 그녀의 행동은 분명 케말에게 '결코 돌아설 수 없게' 만드는 '나쁜 희망'을 주었다.

그토록 헌신적으로 퓌순의 집을 찾던 시간이 8년 후 마침표가 찍혀진 이유는 뭘까? 케말의 변심? 더이상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왔을까? 아니면 퓌순의 마음을 잡아서 더이상 집을 찾을 필요가 없이 한집에 살게 된 건가? 내가 예상했던 결말은 분명 맞았음에도, 세부적인 내용은 90%가 빗나갔다. 게다가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치닫는 그 때가 되어서야, 케말에 대한 퓌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마음을 단 하나의 사물(귀고리)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사물에 담긴 추억과 시간이 이토록 많은 것을 말해주기에 케말이 '순수 박물관'을 지어 퓌순에 대한 기억을 담고자 했겠지.

"책을 읽은 사람들은 퓌순의 머리카락과 옷, 모든 것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 당신처럼 - 오고 싶어 할 겁니다. 소설 끝에 지도를 그려 넣어, 궁금한 사람들이 이스탄불 거리를 걸어 우리 박물관으로 찾아올 수 있게 해 주세요. 퓌순과 우리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거리를 걸으며 이스탄불 풍경을 볼 때마다, 내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기억할 겁니다. 우리 책을 읽은 사람들은 무료로 박물관을 입장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책에 입장표를 넣는 것이 좋겠습니다. 문 앞에 있는 안내인은 책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표에 순수 박물관의 특별한 도장을 찍고 안으로 들여보낼 겁니다." (p.386)

터키에 가게 되면 가방에 이 책은 꼭 넣어가야겠다. 책으로 읽은 모든 것들이 눈 앞에서 현실이 되는 그 느낌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내가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p.403)케말이 찌질하다는 말은 취소.

케말이 찌질하다다는 말은 취소. 그의 이 말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