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를 읽고는 주인공의 생각이 엉뚱하다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는 '연애편지의 기술'을 연마해서 여자들을 반하게 할 거라니.... 도대체 그런 생각을 갖고 사는 주인공이 궁금해졌다. 표지 속, 자신의 팔뚝보다 더 굵어보이는 연필으로, 전지만한 편지지에 글씨를 쓰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모리타 이치로 되시겠다. 모리타는 (특별히 전공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취업이라는 새로운 바다에 뛰어드는 게 무서워 대학원을 진학한 학생으로, 교수님에게 등떠밀려 노토라는 해안가지방의 연구소에 해파리연구를 위해 보내진다.

아는 사람이라곤 전혀 없는데다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 곳에 떨어지게 된 모리타의 대화상대는, 범인형 얼굴을 가진 실험실의 다니구치씨와 흐느적대는 해파리, 그리고 수족관의 돌고래들뿐. 그는 그래서 펜을 들었다. 그리고 교토에 있는 사람들과의 편지왕래가 시작된다. 이 책은 모리타가 보내는 편지들로, 짝사랑 상담을 해오는 친구 고마쓰자키, 모리코의 천적 오쓰카 선배, 과외를 가르쳤던 마미야군, 모리타를 꿰뚫어보는 누이동생, 그리고 모리타가 짝사랑하는 이부키씨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묶여있는 형식이다. 아, 그리고 흥미롭게도 작가인 '모리미 도미히코'도 등장한다.

가벼운 소재들과, 단지 친한사람끼리 주고받는 안부편지들을 묶어놓고는,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건 그렇고 나는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보이는 걸까요. 그게 궁금합니다. 보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닐까요? 그렇게 식은 죽 먹듯이 미래가 열릴 것 같다니, 사람들은 그걸로 족한 걸까. (p.130)

 

모리타는 내가 그렇듯, 생각없는 듯 보이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 시대의 20대다. 그의 어리바리함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완벽하지 못함이, 그 부족함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자신이 찾고 있는 바로 그 상대가 자신을 요구하는 그런 얌체 같은 현상이 정말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렇게 절묘한 배합이 도처에서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모두 거짓말일 겁니다. (p.212)

 

사랑을 바라보는 모리타의 시선이, 나와 너무도 닮아 깜짝 놀랐다.^^

 

 

	내 나이 어느새 서른이야. 뭔가 벽 하나가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걸 넘으면 어떻게든 되는 걸까? 아니면 나는 넘지 않아도 되는 벽을 쑤시고 있는 걸까.... 그게 가장 불안한 점이야. (p.330)

 

나이가 먹으면 어른이 되는 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어리고,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나이가 사람을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를 지켜주던 든든한 울타리였던 부모님을 이제 내가 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난, 성장하고 싶어졌다. 내게 이 책은 성장소설이었다. 청소년이 아닌, 20·30대를 위한 성장소설.

 

 

	전해야 할 용건 따위는 아무것도 쓰여 있는 않은. 그냥 무심하게 상대와 연결이 되고 있는 단어만이 둥실 허공에 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는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아무렇지도 않은, 아무래도 좋은, 아무것도 아닌 편지를 많이 써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p.380)

 

엉뚱한 모리타의 말에, 나는 편지가 쓰고싶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아무래도 좋은, 아무것도 아닌 편지가.... '밥 먹었어?'하는 안부인사에 대한 답이 일주일 즈음 걸려야 도착할 편지가 쓰고싶어졌다.

 

+글귀의 출처는 『연애편지의 기술』(살림, 2010, 초판 1쇄)이고,
본 포스팅의 글귀와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