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작품은 『노인과 바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또한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책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다시 읽어야 할 지경이다. 얼마전에, 헤밍웨이의 글 중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인터넷 검색창에 원제를 치고 검색을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었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검색을 했는데, 빨간 글씨로 찍혀있는 '품절'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되물으실지 모르겠다. 헤밍웨이같은 작가의 책도 구할 수 없는 책이 있냐고. 그런데, 유명작가일수록 부익부빈익빈 -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비슷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한마디로 유명작가의 대표작 몇 권만 넘쳐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작가의 인지도를 무색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불연듯, 구하려 애쓴 시간이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찰스 디킨스의 책 한 권이 떠오른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이런 일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다행히, 책이 안팔려서 절판을 겨냥한 '품절'은 아니었다. 양장본으로 개정판을 계획하고 있다며, 친절하게도 한 권 정도는 출판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책 중에서 그냥 보내줄 수 있다하셨다. 나는 나중에 양장본으로 나오면 사보겠다 사양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런데, 흑, 그 과도한 사양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 책, 『헤밍웨이의 글쓰기』에서 내가 읽고자 했던 그 책이 자주, 너무나 자주 등장하여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흑,ㅠㅠ 그냥 보내달라 할 걸.

처음 이 책을 보고는 헤밍웨이가 글쓰기에 대해 쓴 책인 줄 알았다. 내게 온 책에 대해 짧게 기록한 '책이말을걸다'와 '북다이어리'에도 그렇게 적었건만, 그건 반만 사실이었다. 이 책은 래리 W. 필립스가 헤밍웨이가 쓴 소설, 편집자와 친구·동료 작가들에게 보낸 편지들, 인터뷰와 기획 기사에서 '글쓰기'에 대한 것만 발췌·편집하여 엮은 책이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는 실망했지만, 글을 읽어갈수록 헤밍웨이가 (이곳저곳에서 발췌했으니 헤밍웨이가 연관성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텐데도) 끈임없이 일관되게 글쓰기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피력했던 견해를 수집하는 일은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특정 주제에 관해서 얘기할 때 누구나 그렇듯이 글쓰기에 관해 헤밍웨이의 글도 이른바 자기 세계 안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 글들을 다시 가져와서 여러 개의 범주로 묶어 정리하는 동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수십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기에, 다른 도시나 국가에서 무작위로 썼던 견해들이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마술처럼 끼워 맞춰진 것이다. (p.5~6)

	좋은 글은 진실한 글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그 이야기의 진실성은 작가가 지닌 삶에 대한 지식의 양과 진지함의 정도에 비례한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를 창작할 때 그 이야기는 작가만큼 진실해진다. (p.21)

이 단 세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책에서 끈임없이 '진실'을 강조한다. 이 책이 세세하게 분류해서 작가의 자질, 작가들에게 주는 충고, 작업 습관에 대하여, 음란성, 정치, 작가의 삶,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 무엇에 관해 쓸 것인가?, 등장인물, 생략해야 할 것들을 알기, 제목, 다른 작가들이라는 각 장에 모아놓은, 그의 글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진실한 글쓰기'다. 그가 얼마나 머릿속에 새기고 새겼는지가 가슴깊이 느껴질 정도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인간적인 헤밍웨이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의 개인적인 생각들만을 모아놓았기 때문인가보다. 책 속의 문장들을 뽑은 각각의 책을 읽었어도 이런 느낌이 받았을까?

	Y. C. : 그 다음엔 경청일세. 사람들이 말을 할 때는 온전히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듣게.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지. (p.30)

그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작가들에게 주는 충고 중 하나이지만, 천생 독자인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그의 확고한 의지와 힘이 느껴져서 가슴에 더 잘 와닿는 글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비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상징적 표현이란 건 없다는 거죠. 바다는 그저 바다입니다. 노인은 그저 노인일 뿐입니다. 소년은 소년이고 물고기는 물고기입니다. 상어는 그냥 상어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상징적 표현이란 것은 모두 헛소리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란 자신이 알고 있을 때, 그 이상을 보는 것이지요. (p.139)

역시 책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말고 단순히 느껴지는 대로 읽어야 하는 가보다.^^

+글귀의 출처는 『헤밍웨이의 글쓰기』(스마트비즈니스, 2009,초판1쇄)이고,
본 포스팅의 글귀와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