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생각이 많이 나는 책읽기였다. 지금은 수능과목에서 국사가 쪼개졌다고 얼핏 신문기사를 읽은 것도 같은데, 내가 시험볼 때는 국사는 공통과목이었다. 국사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처음과 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수학의 집합이 그러하듯 원시시대는 새로운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펴들기 때문에 난이도와 상관없이 통달하게 되어있다.^^; 문제는 끝인데,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그러하겠지만) 조선시대 사림파들이 정권을 잡는 즈음, 학생들은 지쳐간다.

도대체 리(理)와 기(氣)가 정확이 무엇을 말하는 지 알 도리가 없다. 몇몇 단어들로 축약된 특징을 머릿속에 넣어보지만, 그야말로 뜬구름잡기다. 게다가 그 뜬구름으로 사람들은 패를 만들어 나누어지고, 또 나누어지고.... 그렇게 쌓여가는 마음속의 답답함은 사단칠정논쟁에 이르면 폭발한다. 아, 도대체 사단과 칠정이 리에서 나왔으면 어쩔거고, 기에서 나왔으면 또 어떻단 거야!! 게다가, 상복을 1년 입을 지, 3년 입을 지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는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그 어려움에 비해 출제빈도가 낮은 논쟁들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왜 상복문제가 그리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기엔 앞으로 설명해야 할 환국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머릿속엔 4대 사화와 4대 박해, 그리고 주요 환국들의 앞자 딴 암기법, 붕당계보도같은 것들만 남았다.

이 책엔 '나라를 위한 선비들의 맞대결'이라는 부제답게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7쌍의 라이벌이 등장한다. 정도전 - 이방원을 처음으로 해서, 조광조 - 남곤으로 시간을 뛰어넘으니 시대적으로 뒤쪽으로 쏠려있고, (평민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무신이 없다는 것이 살짝 아쉽지만, 뽑힌 14명이 쟁쟁한 인물들임에는 분명하다. 별 생각없이 책 소개를 읽었다가, 이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도 바로 그 인물들 때문이었다.

정도전 - 이방원 : 조선의 운명을 가른 사투
조광조 - 남곤 : 뿌리 깊은 정쟁의 시작
퇴계 이황 - 남명 조식 : 가깝고도 먼 주자학의 동반자
율곡 이이 - 서애 유성룡 : 십만양병설, 그 진정한 의미는?
최명길 - 김상헌 : 주화인가, 척화인가
송시열 - 윤휴 : 조선 역사상 최대의 사상 논쟁
다산 정약용 - 심환지와 노론 벽파 : 진보와 보수, 시대의 리더십

책의 형식은 우선, 한 장면을 포착한다. 마침내 정도전의 목숨을 빼앗던 초가을 저녁, 이방원의 모습을 두 페이지에 이야기형식으로 담아내며 글을 시작한다. 그 후 짧게 정도전과 이방원에 대한 소개가 한 페이지씩 들어있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삶(태어남부터 죽음까지)을 그려내며 두 사람의 대립한 부분은 조금 더 깊이 다루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런 형식으로 14명의 삶을 되짚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어릴 적에는 이황, 이이, 정약용에 대한 위인전을 읽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국사공부는 왕중심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이렇게 그 시대의 사상을 세웠던, 그들의 삶 중심으로 역사를 읽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니 말이다.

책은 친절하고, 재미있다. 이야기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고, 둘 중 어느 한 명의 손을 번쩍 들어주지 않아서 그동안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삐딱하게 바라보던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역사는 알면 알 수록, 그리고 글 쓴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매력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14명의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 흥미를 느끼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정약용을 떠올리게 되고, 주자라는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앉아계신 송시열 할아버지와 그 틀을 이리저리 손보려드는 윤휴의 모습도 보인다. 청 관리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고 있는 김상헌과 그 모습을 어쩔 줄 몰라하며 바라보는 최명길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아, 그리고, 읽는 동안 국사지식이 도움이 되는 걸 보면- 가끔은 주입식 교육도 예쁜 짓을 하는 것 같다.^^; 

+글귀의 출처는 『조선을 만든 사람들』(청아출판사, 2009,초판1쇄)이고,
본 포스팅의 글귀와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