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1972년 단편 <아우를 위하여>, <낙타누깔>, <밀살>,<기념사진>,<니웃 사람>, 중편 <한씨연대기> 발표
1973년 구로공단 연합노조준비위를 구성하여 공장 취업.
단편 <잡초>, <삼포 가는 길>,<야근>,<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섬섬옥수>, 중편 <돼지꿈>
르뽀 <구로공단의 노동실태>를 발표함.

천국보다 낯선 삼포 가는 길

<삼포 가는 길>의 두 주인공은 한겨울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 영달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길 한가운데에 서 있다. 정씨는 삼포로 가겠다는 목표가 있다. 어차피 별다른 생각이 없는 영달은 정씨를
따라 나선다. 여기까지는 아주 단순해 보인다. 이들은 서로 길동무 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국밥집에
들어가게 되고, 고용한 아가씨가 몰래 떠난 바람에 화가 나 있던 국밥집 여주인은 아가씨를 찾아다주면 보상을
하겠다고 한다. 다시 길을 떠난 이들은 달아난 아가씨를 발견하지만, 보상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밥집에
데려다주기는커녕 오히려 아가씨를 데리고 여행을 계속한다. 영달은 아가씨와 함께 살림을 차릴까 하는 생각
까지 한다. 아가씨나 정씨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살림을 유지하기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포기를 하고 여자를 떠나 보내고 정씨와 삼포행 기차를 타기로 한다.

최원식: 노동자 따라 가셨다는 게 그분이에요?
황석영: 그렇죠. 며칠 같이 있는데 얼마나 얘기가 재미있는지... 해병대 중사 출신이었어요. 그래서 당신
              따라갔으면 좋겠다 하고는 집을 나왔죠. 그 사람 집은 천안이데, 부인은 아이들 데리고 풀빵장사를
              했어요. 그 사람 따라서 간척지 공사장에도 가고 신탄진 공사장에도 가고,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대구
              시장에서 헤어졌죠. 신탄진 공사장에서 떠날 무렵에는 우리가 조치원에서부터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
              쳤거든. 그게 <삼포 가는 길>이었어요. 그때 비가 왔어요. 소설에서는 눈이 오지만.

길, 배경없는 등장인물, 눈

여행을 넘어서 목적지는 결코 도착할 수 없는 곳이며,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간단한 씰루엣 외에는 알려주지
않은 채, 힘찬 담화의 줄기를 통해 황석영은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진정한 의미의 주인공은 오히려
모든 것을 미로로 만들어버린, ’해독이 불가한 양피지’라고 할 수 있는 겨울과 눈일 것이다.
통로와 그에 따른 방황(통로 모색과 그 불가능성으로 인해서), 귀환의 욕망과 그 불가능성, 이것이 바로
황석영의 작품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힘이며, 이 작품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백화, 문숙 그리고 이만희

1975년. 한국 영화사의 비운의 천재 이만희에 의해 <삼포 가는 길>은 영화화 된다. 한국 최초의 로드 무비란
평가 속에 이듬해 대종상 7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지만, 감독 이만희는 <삼포 가는 길>의
편집 중에 지병으로 사망한다.

삼포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그가 돌아가야 하는 그만의 곳이다. 삼포는 백화가 가야 할 목적지는 아니다.
백화는 또 한 사람의 우울하고 퇴폐적인 인생의 소유자이다.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출생이 분명치 않고 살기
위해 닳고 닳은 슬프고 거친 아이이다. 허나 아직 밝고 순수하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백치같고 단순한 그녀가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밝으면 더 밝을수록, 끝없이 웃으면 웃을수록 아는체 큰소리를 치면 칠수록, 그녀의 존재는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삼포는 그런 백화가 가야 할 곳이 아니다. 백화는 운명적으로 삼포로 가는 길
어느 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곳이 바로 ’역’이다.           -문숙(영화 <삼포 가는 길>의 백화 역)

깊은 서정성이 빛나는 휴머니즘의 산문정신(라 리베르떼)

단편 미학의 정수를 보이고 있는 <삼포 가는 길>은 고통의 현실을 구성적 상징으로 향유한 작품에 속한다.
산업화 초기의 떠돌이 주변인들의 초상을 잔잔한 어조로 그린 이 소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의 하루 시간
안에 적절한 공간 이동을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인물의 성격 창조 및 관계 형성에 성공하고 있다. 그에 따른
문체와 어조의 호응도 어지간하다. 아울러 주제를 제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념적 편향성이나 감상적 편향성
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핵 단위로 추출될 수 있는 사건은 영달과 백화의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어느 경우나 적절한 절제와 합당한 동기 부여로써 현실 원칙과 쾌락 원칙의 균형과 조화를 알게 한다.
현실적 고통의 심미적 향유 효과를 십분 보여준 작품이 바로 <삼포 가는 길>인 것이다.             -우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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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황석영 문학의 세계>(창비,2003)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