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고 있지만 책에 담긴 내용을 보면 한문학자(부산대학교)답게 조선부터 해방전후까지 소중한 시대상을 담고 있는 고(古)문서를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환기시켜 주고 있다.

 

간서치 이덕무의 손자 이규경이 잡다한 정보를 주제별로 분류한 <오주연문장전산고>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고문서 내용들을 저자 강명관 교수는 소개하고 있다. 귀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부산의 보수동 책골목으로 책 이야기를 꺼낸다. 지난 추석 명절을 이용하여 부산 국제시장을 가족과 함께 다녀온 기억이 있어 보수동 책방 거리 사진이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화려한 국제시장, 깡통시장과 비교하면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수북히 쌓여 있는 책방 골목이 나에게는 오히려 정감이 갔다. 저자도 시간이 되면 틈틈히 아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보수동 책방 골목을 찾는다고 하니 애서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책 과 冊 의 차이점

 

"이태준이 책이란 글자만은 '책'이 아니라, '책'으로 쓰고 싶다고 했던가? 책은 직접 보고 골라야 한다는 낡은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38)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들쳐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이것도 읽어 보고 싶고 저것도 읽어 보고 싶고. 그러다가 책 고르는데 시간을 많이 까먹는 경우가 많지만 책 고르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인터넷 서점 싸이트에 들어가 보면 현란한 책 광고가 메인을 차지하며 고객을 향해 손짓한다. 책의 일부분을 보여 주는 싸이트도 있지만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것은 왠지 딱딱한 느낌 때문인지 감동이 덜하다. 아직까지 종이 질감을 손으로 만지며 눈으로 구석구석 훑어 보는 감각으로 책 고르는 것이 더 감칠맛 난다.

 

대학교수가 만화 중독자?

 

저자는 만화 보는 것을 즐겨한다고 고백한다. 대학 교수이지만 떳떳히 고백한다. 잘 찾아보면 만화를 통해 얻는 지식이 상당하다고 한다. 어려운 원전도 일단 만화를 통해 사전 지식을 입수하고 도전하면 많은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만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랍의 봄>, <체르노빌>, <일본인과 천황>, <아! 팔레스타인>, <미생>

 

교과서를 바라보는 관점

 

작년 한 해는 역사 교과서 파동이 강렬했었다. 근대사회에서는 교과서는 '절대 진리'와 견줄만했다.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교과서의 권위는 조금씩 추락하고 있고 이제 대학입시제도만 바뀌면 교과서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교과서는 국가권력을 배후에 두고 있다"(83)

 

"국가의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은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국가에 충성하는 개체를 만드는 것이다."(85)

 

일제강점기 때의 교과서를 예로 들면 적절할 것 같다.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도 위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국가에 복종하는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과서가 사용된 예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과서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 교과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도구 삼아 지적 확장을 꾀하여만 시대다.

 

할아버지보다 더 나은 손자, 이규경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하는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저자 이규경. 오주, 연문, 장전, 산고로 읽어야 됨. '오주'는 이규경을 가리키고, '연문'은 문장을 부연 설명한다는 뜻이며, '장전'은 긴 종이, '산고'는 이런저런 글이란 뜻. 이규경은 할아버지의 명성답게 책 읽기에 일생의 거의 대부분을 소모했다. 친구와 어울려 술 마시는 시간도 절약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의 자료를 찾고 읽고 분류하여 만든 방대한 분양의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규경의 삶 전체를 대변해 주는 책이다.

 

<오주연문장전사고>는 권보상이라는 국어학자가 군밤을 사다가 군밤포장지 뒷면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찾아낸 결과물이다. 군밤 장수에게 돈을 치르고 포장지를 모두 사서 책을 보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쓰레기들의 반란'이라는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책을 읽다가 우리 조상들은 종이가 부족한 과거에 책의 뒷면을 재활용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도배지에서도 값진 고문서를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책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했다고 한다. 옛 고문서에 대한 가치를 하챦게 여기고 근대식 문화를 반영한 책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우리의 문서들이 쓰레기 취급 당하듯이 일본으로 헐값으로 반출되었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이러한 현실을 보면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문서가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고문서보다 엄청 많다고 하니 슬픈 과거의 한 대목이다.

 

"고문서가 이렇게 허망하게 폐기된 것은 전근대의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고, 국가와 사회의 제도가 완전히 뒤바뀌었으니 과거의 관청 문서들이야 말로 한 푼어치의 값도 없는 것이었다. 폐지로 팔린들 누구 하나 아까워하지 않았다. 호적, 토지 문서 등 사회경제사의 기본 자료가 되는 문서들이 어느 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 (243)

 

천주교 탄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황사영 <백서>도 죄인을 문초하던 관서인 의금부가 조선의 관제에서 없어지자 폐기가 된 것을 천주교 관계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결국 로마교황청까지 흘러간 것이라고 한다.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도서관에서는 고문서만 소장, 관리하는 기관이 따로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한 번쯤 관계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좋은 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건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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