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어른들은 세상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 때문에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폭 넓다. 젊은이들보다 지혜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른 것 같다. 나이 들어 보이나 행동하거나 말하는 것을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이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아마 예전과 달리 인터넷에 푹 빠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 아닐까? 애나 어른이나 똑같아지는거다. 학생들이 학교에 다녀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체득하면서 지혜로울 수 있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소설을 읽는 것이다. 소설가는 픽션이지만 세상에 있을 법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갈등과 복선을 깔고 사건을 전개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한 권을 독파하다보면 수십 명의 특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혹시 세상 살아가면서 작품 속에 나왔던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 있다. 미리 학습 하는 거다.

 

정한아 작가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은 상당히 많이 복선을 깔린 작품이다. 소설은 처음 부분을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건이 시작되다보니 누군의 대사인지 인물이 매칭되지 않아 사건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10여쪽만 신경 바짝 쓰고 읽으면 거의 다 읽은 거나 마찬가지다. 시작이 반인 셈이다.

 

<친밀한 이방인>은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친밀하다'와 '이방인'이 왠지 어색한 대구를 이루고 있다. 낯선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부르는데 작가는 굳히 왜 '친밀하다'라고 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 키워드가 있다.

 

희대의 사기꾼이라 불러도 좋은 만큼의 이유미는 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 교사로 부터 성폭행을 당하며 인생이 어그러지니다. 서울로 상경하여 S여대 학생으로 속이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교수, 피아노 강사, 의사 등 자신의 직업을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소설의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남자'로 변신한다. 동성애자인 선우진의 파트너가 되어 유산을 상속받게 끔 도와준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소설 속 '나'다. 그녀는 교수인 남편을 두고 있지만 어떤 이유인지 불륜 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 쓴 소설이 뒤늦게 신문에 게재되고 작가를 찾는다는 광고를 접하면서 선우진과 이유미를 만나게 된다.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133)

 

소설 속 주인공 모두가 가짜 삶을 살아간다. '나'도 남편과 이혼 후 자신을 찾아간다. 폐허가 된 다음에. 이유미도 재산 상속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발견하게 된다. 동성애자인 선우진도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난 뒤부터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70대 부유한 노인도 요양호텔에서 만난 이유미를 통해 뒤늦게 자신을 찾아간다.

 

우리의 진짜 삶은 무엇일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은 가짜 삶이다. 포장된 삶이 아니라 진솔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