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가들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을 한국 근현대사의 결정판이라면서 한국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그러나 독서에 습관을 붙이지 못한 상태에서 적지 않은 분량으로 되어 있는 책들을 읽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책들이다. 

작년부터 박경리 <토지>를 시작으로 조정래 <태백산맥>, <아리랑> 순으로 정복해 가고 있다. 시대적 배경이 멀게는 동학 운동 때부터 시작되다보니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 책 한 책 억지로라도 읽어나가다 보니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토지>와 <아리랑>이 연결되면서 한결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역시 독서는 빈익빈부익부인가! 독서의 배경 지식이 쌓일수록 다음 책을 읽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움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아리랑> 12권 중 9번째를 정복했다. <토지>에 등장하는 친일파 조준구의 몰락처럼 <아리랑>에서는 만석꾼 양반댁 정재규의 몰락이 인상적이었다. 도박에 미쳐 초가삼간으로 쫓겨 가게 된 정재규의 삶을 보면 통쾌하다가도 불쌍한 마음이 든다. 일본 미두 장사꾼들의 속임에 넘어가 그 많던 재산을 잃어버리고 초라한 행색으로 살아가야 할 그의 삶이 자업자득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대가 낳은 결과이기도 한 것 같다.

친일 지배인 격 노릇을 했던 이동만도 사금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일본인들에 사기를 당해 결국 자산을 다 잃어빌고 그마저 목숨을 버리게 된다.

조선인 소작인들을 쥐어짜듯 악랄하게 굴었던 그의 죽음 앞에 그 어느 누구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제 치하가 천년만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세당당하게 행동하는 친일파들의 행적들, 그리고 총독부 산하 일인들과 달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젊은 독립투사들, 지하조직으로 숨어들어 소작쟁의를 주도하며 노동자와 농민들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철저한 경찰 감시망을 뚫고 운동을 전개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삶은 극과 극으로 대비된다.

 

일본인들의 만행을 생각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국토를 강탈하고 백성들을 수탈해 갔던 일본인들, 일본인들에 빌 붙어 거머니처럼 자신의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었던 간신배들이 다시 이 땅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역사 인식과 학습이 있어야 한다.

 

한국 근현대사만큼 다루기 어려운 분야가 없다. 아직도 사회 지배층 가운데 친일파의 후손들이 권세를 등에 엎고 실질적으로 이 사회를 주도해 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부를 도려내어 환부를 말끔히 씻어내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곪을 수밖에 없다. 고통이 뒤따른다할지라도 분명히 치욕스러운 부분들을 밝혀내어 잘잘못을 따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 땅의 후손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역사 교육의 필요성이다.

 

만주와 연해주에도 일본 밀정들이 그물망처럼 뻗쳐 있다. 결국 무정부운동을 펼치던 송수익이 밀정의 늪에 빠져 잡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