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장서가들의 고충을 담아낸 책 <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짤막하게 책의 내용을 올린 적이 있다. 올린 글 중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답글로 메모를 남겨 주신 분이 있었다. 닉네임으로 답글을 올려 주셔서 누군지 몰랐다. 단지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오류를 정정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짤막하게 답글을 다시 남긴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자주 가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가지고 왔다. <책이 좀 많습니다> 윤성근 지음.

며칠 묵혀 두었다가 어제 책 속지를 보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 윤성근 님임을 알게 되었다. 오류를 바로 잡아 준 답글을 남겨 주신 분이 바로 윤성근 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책이 좀 많습니다>는 우리와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무명의 애서가들의 책 이야기가 담겨 져 있는 책이었다. 책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과 함께 하는 삶의 이야기다. 애서가들의 고충 중에 한 가지가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원룸 또는 작은 아파트에서 책을 보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애서가들에게 적어도 누워야 할 곳이 있어야 하고 화장실과 최소한의 생활 공간을 제외하면 책을 쌓아 둘 수 있는 공간은 극히 부족하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책 읽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에 비해 현저히 독서량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이들을 통해 책을 즐겨 읽는 삶이 전염되기를 원한다.

 

애서가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책 읽기 영역들이 있다.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책을 읽다보니 자신만의 영역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독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영역을 섭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마음 자세가 도전이 된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 님도 알고보니 애서가 중의 한 분이신 것 같다. 홈페이지도 들어가보았더니 내가 뒤늦게 알아서 그렇지 오래 전부터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 세계에서는 모두 가 다 아는 분이셨다. 그런 분께서 내가 올린 글을 읽고 오류를 정정해 주셨다고 하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책을 즐겨 찾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역사에 무관심한 아이들 위해 고민하고 있던 때에 책 내용 중에서 <맹꽁이 서당>을 찾아내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판매중지라는데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판매로 나와 있다.  

 

1.

위대한 책벌레들의 우상 릭 게코스키가 한 말이 맞다. 책 많은 사람치고 넓은 집에 사는 이가 없고,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이 책 수집가가 될 가능성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12)

 

2.

책장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글자만 빼곡한 종이 뭉치가 아니다. 삶을 재미있게 만들고, 때로는 웃고 울게 하면서 내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힘을 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풀어내지 못할 문제가 무엇이 있을까? (48)

 

3.

혼자 읽는 책이 자기가 걸어갈 앞길을 밝히는 도구라면, 여럿이 읽는 책은 우리 주위를 밝히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72)

 

4.

책만큼 귀한 친구가 없고 그만한 스승을 찾기 힘들다.(98)

 

5.

그저 무엇 때문에 어떤 책을 읽지 말아라.내용이 재미있다거나 거기서 얻을 것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런 이유가 없을 때는 읽지 않게 된다. 책은 읽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 책을 읽어서 그 안에 담긴 걸 빨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읽을 책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다 읽고 제대로 이해하느냐고 생각하면 책 읽기가 어려워진다. 늘 과정이 중요하고, 책마다 숨겨진 매력을 찾아내는 게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럴 때 오히려 많이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 (140)

 

6.

치우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책을 잘 안 본다. 보더라도 한두 분야에 빠져버린다. 책을 통해서 자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 멋대로 책을 판단해 벌니다. 종교인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치명적인 함정이 바로 편협하고 배타적인 믿음이다. 책을 다양하게 보면 여러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데 도움이 된다.(153)

 

7.

책은 확실히 겸손함이 중요하다. 책처럼 범위가 넓고 깊은 매체가 없기 때문에 책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무엇보다 책 자체에 겸손함을 가져야 더 넓은 곳까지 책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자기 배에 제아무리 큰 돛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바다를 잘 아는 건 아니다.(190)

 

8.

도쿄의 도시 풍경을 살피며 생각했다. 결론은 바로 책이었다.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본 사람들은 어디서나 책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방에 문고본 책을 넣고 다니다가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카페에 앉아서 쉴 때 꺼내 읽는다.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다. 지하철 안은 아주 조용해서 마치 도서관 같은 분위기라고해도 괜챦을 정도였다.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사람보다는 앉거나 서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