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한 권은 다음 책, 다음 작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서 영역을 넓혀 준다."

 

일본은 우리보다 독서에 관한 한 한 수 우위인 것 같다. 국민들  저변에 깔려 있는 독서에 대한 인식과 독서량이 우리보다 폭넓고 깊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1인 헌책 시장'이 축제(하토리쇼텐축제)로 매회 개최된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없다. 우리도 얼마 전부터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축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책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서를 취미생활로 하는 일본인들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열광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책 표지 그림처럼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책장과 빈틈, 바닥까지 책을 쌓아 올려 놓고 지내는 장서가들, 목조주택 2층 다다미방 바닥에 책을 너무 많이 쌓아 올려놓은 나머지 주저앉을 위기에 놓여 있는 장서가, 자신이 누울 곳만 빼고 모조리 책으로 둘려 쌓여 있는 장서가, 종이 상자 수백상자씩 책을 넣고 쌓아 놓고 있는 장서가 등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책을 모아놓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장서가 '괴로움'이 되나보다.

 

지진이 빈번한 일본에서 집 안 구석 구석 빼곡히 책을 쌓아 올려 놓고 있다면 과연 위기 상황이 일어났을 때 안전할 수 있을까? 장서의 괴로움이다.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장소에서 책들만 쌓여 있다면 결국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동안 모아 놓은 책들을 처분해야 되지 않을까? 장서의 괴로움이다.

헌 책방에 책을 내다 놓은 심정이 어떨까? 그 동안 아껴 모아 놓은 돈으로 책을 사 두었는데 다시 헌 책방에 내다 놓는다면? 내 피와 살이 떨어져 가는 고통을 감내해 내야 되지 않을까? 장서의 괴로움이다.

장서들을 보관하기 위해 일년간 일정량의 보관료를 지불해야 한다. 보관료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장서의 괴로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서는 독서가를 탄생시킨다.

" 책 5백 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150)

장서의 괴로움을 달래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서를 통해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명창정궤'야말로 예부터 문인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서재 모습이었다. 출전은 중국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저서다. 밝은 창문이 있는 깨끗한 방에 책상이 있다. 거기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54) 명창정궤라는 사상 속에는 책장이 없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서재는 책장을 갖는 순간부터 타락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책장이 있으면 책을 꽂아두고 싶다는 소유욕이 생기기 때문이다.(60)

필요한 책은 곧바로 손에 닿는 곳에 있는 게 이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