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에 목이 탔던 나무는 뿌리 끝까지 적셔주는 빗줄기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오랜 그리움…….

하네다 료코의 새로운 앨범 <Terrace Wind>를 듣는 순간 나는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첫사랑이 그리워졌다.

 

그리움의 대상이

처음으로 좋아했던 그 누군가인지,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모습인지,

아니면 그저 싱그럽기만 했던 젊은 시절인지

알 수 없지만…….

 

‘Terrace Wind’라는 곡에는 그런 아련한 첫사랑이 담겨 있다.

사실 이국적인 풍경의 앨범 재킷과 달리, 이 곡을 듣는 순간 나는 눈 덮인 추운 겨울이 떠올랐다. 나에게 첫사랑은 시린 겨울이었고, 하네다 료코에게 첫사랑이란 “테라스에 불어오는 바람은, 레몬 스카이의 향기를 마음에 남기네. 나의 첫사랑, 잊지 못할 추억의 테라스.”라는 곡 설명처럼 시원한 여름날이었나 보다. 이 곡을 들으며 누군가는 나처럼 겨울을 떠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봄이나 가을을 떠올리겠지. 가슴을 잔잔히 울리는 건반 소리가 마치 지면을 두드리는 빗줄기 소리처럼 내 마음 속에 울려 퍼진다.

 

두 번째 곡 'Lemon Sky'는 어느 여름날 비가 그치고 난 뒤 고요해진 숲 속 안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뭇잎 끝에서 톡톡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가볍고 잔잔하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세 번째 곡 ‘Elegy’를 듣고 나면 달콤했던 옛 추억을 연상시키는 ‘Venezia'가 흘러나온다. 마치 해질 무렵 창가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처럼 감미로운 멜로디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나 감미로웠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쓸쓸하고 우수에 차 있다. 여덟 번째 곡 ‘TEMA Dell'Addio'에서는 슬픔의 감정이 잔잔한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밀려든다. 아홉 번째 곡 ’Remained On You'에서는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담담한 멜로디가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열 번째 ‘When The First.'에서는 애써 눌러도 새어나오는 슬픔이 위태롭게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러다 갑자기 ‘Einspanner’의 달콤한 멜로디가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왈츠를 추듯 머릿속을 맴도는 멜로디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회상’일 뿐이다.

“꿈이란 걸 알면서도 깨지 않길 바라던, 기분 좋았던 어느 하루.”가 끝이 나면 마지막으로 열두 번째 곡인 ‘Sad Romance'가 흘러나온다. 감미로웠던 전곡의 여운을 모두 덮어버릴 만큼 차갑게 쏟아지는 멜로디에 가슴이 시려온다.

 

첫사랑은 그저 지나간 옛 일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 처연하게 흐르는 멜로디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면 또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만다. ‘Terrace Wind'의 아련한 느낌을 되새겨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