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쓰기 전에 [내 마음의 여행] 부록에 담겨 있는 [음악선물] 중 한 곡을 찾아 들었다.
잠깐 들어보려 했던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책을 덮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 마음의 여행]은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짧은 글 속에 담긴 긴 여운이 마음에 남아, 내 모든 감각을 울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큰 창가를 찾아 앉아 이 책을 읽었다. 
아니 감상했다.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뜨거웠던 내 친구의 일기장처럼, 그 옛 편지처럼,
그렇게 [내 마음의 여행]에 담긴 고운 언어들은 내게 삶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로 읽힌다.
자연을 따라, 삶을 따라,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을 따라
자유롭게 길 떠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일상에 대한 단상은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고, 다소 감상적이지만 경박하지 않다.
’내 마음의 여행지’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무심히 흘려보낸 까닭에,
그리운 친구가 보내온 이국향 가득한 엽서처럼 정겨우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나는 같은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여행병’을 앓고 있다.
매년 새해 다이어리 안에는 ’여행’에 대한 탐욕스러운 소망이 가득하다.
여행 후에는 전쟁의 노획물처럼 어디 어디를 가봤는지 줄줄이 열거하며 자랑삼아 떠들어댄다.
여권에 찍힌 도장은 훈장처럼 내 이력 안에서 뿌뜻하게 빛난다.
그저 직접 가보았다는 자체로 나는 만족하며, 다시 다음 목표를 설정한다.

[내 마음의 여행]은 여행이란, ’어디’를 가느냐보다, 
내가 마주하게 되는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가르쳐준다.
여행지보다 그곳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시선이 더 중요함을 가르쳐준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곳을 지나며, 똑같은 곳을 여행해도,
여행이 선물하는 감동과 추억과 의미가 다른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갯바위 틈에서 삶을 건져내며 한평생 욕심없이 살아 지나온 세월 야속할 것 없는 삶을 만나도,
비탈진 삶의 한구석을 채우고 있는 낡은 방앗간을 지나도,
낙산과 도심 사이 고된 삶을 받쳐주는 달동네를 보아도,
허름한 산비탈 골목에 자리잡은 지 50년이 된 냉면 집에 들러도,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흙길 위를 무심히 달리는 0번 버스를 탓어도,
세상의 요란함과 잡생각으로 시끄러운 마음이라면 그 여행이 분주하기만 할 터이고,
삶을 향한 여유와 따뜻한 시선을 가진 여행자라면 역사가 흐르고, 정이 흐르는 곳에서
잊혀진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주는 감격을 간직하고 돌아올 것이다.

[내 마음의 여행]에서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지혜자를 만난다.
그 지혜자는 따뜻한 손길로 나의 손을 잡고,
내가 보았으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곳들로 다시 나를 인도한다.
내가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의 눈을 열어주듯 그렇게 소리 없는 가르침을 내게 준다.
매년 해외로 떠나지 못해 안달하는 내가 얼마나 경박한 삼류 여행자인지 깨달으며 
나는 부끄러워진다.

책을 덮으며 나는 뜬금없이 내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내가 살아온 모든 날들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그때 그곳으로.

일터에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는 친구와 함께 해질녁까지 타고 놀았던 시이소가 있던 놀이터,
그곳에서 보았던 노을,
땅에 선을 긋고 돌맹이를 들고 온몸에 땀이 나도록 뛰어 놀았던 그때 그 골목,
벚꽃이 필 때면 분홍 꽃잎을 날려 우리를 벚꽃나라 공주로 만들어주었던 그때 그 교정,
무지개가 떴다며 달려나가 한 가운데 멈춰 서서 친구와 함께 탄성을 내질렀던 넓다란 운동장,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타야 할 버스를 그냥 보내며 다시 버스를 기다렸던 가로등 밑 정류장,
울지도 못하는 친구 곁을 지키며 함께 친구 부모님을 보내드렸던 먹먹한 화장터,

그리고 
나의 오늘이 되어준 부모님의 땀과 주름,
내가 간직하고 있는 사연 가득한 쪽지와 편지와 사진들,
우리가 같이 보았던 초록잎, 아카시아 꽃, 붉은 해, 하얀 파도, 밑둥 굵은 나무,

생각해보니 내 기억 속의 모든 곳이, 무심히 살아가는 나의 모든 일상이 내 삶의 여행지였다.
[내 마음의 여행], 그것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