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 - 옥중 19년

(사람의 마음은 쇠사슬로 묶을 수 없으리)

 

너무 담담하게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벌어진 국가의 범죄 행위를 기술하고 받아들인다. 영화가 아니라 진짜다. 대명천지 한국의 하늘아래서 벌어진.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상전향서.. 라는 종이 한 장으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말도 안되는 상황.. 진정한 전향이라면 내면의 가치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지 형식을 요구하는 이들에겐 의미가 없다. 그냥 쓰라 이거지.. 다만. 그 형식도 매우 깊은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 사람들만이.. 생을 바쳐..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감옥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 또 무언가를 추구한다.

 

근현대사의 역사를 몸으로 살아가는 그들... 비전향 장기수.. 그들의 신념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 그들은 그렇게 믿을 자유가 있다. 서슬퍼런 시대에 한번 뿐인 인생을 걸고 ..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나는 싸울 수 없을 것이다.

외롭고 긴 그들의 싸움이 개인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며 뼛속까지 새겨진 훈장일 수 도 있겠지만.. 그게 나의 인생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들로부터 유발된 간접적인 민주주의의 혜택은 감히 내가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생을 버려 얻은 그것을 나는 아무런 대가없이...느낌도 없이.. 어떤 신념이든 그냥 신념으로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사회.. 그게 2010의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우리는.. ‘서승’ 과 같은 정치범, 비전향장기수,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사람들을 그저 ‘기억’이라도 해야 한다.

 

<한 가지 더 > 책을 읽는 내내 간수=교사, 죄수=학생.. 등식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생생활규정은 죄수를 다루는 교도소의 규정과 거의 다르지 않다. 통제를 위한 규정들.. 복잡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옳은 것일까.. 내가 학생들을 규정대로. 지도한다는 것.. 그 규정은 어디서 온 것인가.. 보이는데서 만족하면. 나도 그만이었던 거 아닌가.. “최소한 선생님 앞에서는 하는 척이라고 해라”는 그런 눈치볼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게 목적이었나?

 

41쪽 - 원자폭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타 문드러진 나의 얼굴에 새로 돋아나온 희미한 새 생명의 조짐이 바로 속눈썹이었다.

61쪽 - 감옥 안의 시간도옥 밖에서 추구했던 것과 같은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야 할 내 인생의 일부였다.

110쪽 - 특사는 가장 두려운 ‘감옥 안의 감옥’이었지만 여기서도 ‘사람의 마음은 쇠사슬로 묶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깨뜨릴 수 없었다. 공작관은 사상전향 공작을 하러면 비전향수의 생각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얄궂게도 그런 의미에서는 ‘감옥 안의 감옥’이 대한민국에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가장 허용된 곳이었다.

132쪽 - ‘교도소는 작은 감옥, 사회는 큰 감옥’이란 말은 전국토를 감옥화한 독재통치의 가혹한 현실을 풍자함과 더불어 감옥과 사회의 경계가 무너져 독재가 원하는 감옥의 고유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63쪽 -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국민교육헌장, 재소자 준수사항을 몇백 번 암기시켜도 자기의 가치로서 내면화하지 않고 감옥 바깥에 나가면 한 순간에 잊는다.

236쪽 - 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사상전향하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특사의 처우를 더 좋게 해야조. 이게 당신들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까. 처우라든지 물질적 조건에 넘어가 전향한다면 진짜 전향이라고 할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