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이라는 곳은 유럽의 사람들조차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교황이 신과 같은 형식으로 추앙받고 존경받는 사회에서 교황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영국 왕실에 들어가 일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통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고, 그런 곳은 학식의 출중함 보다는 출신 서열이 은연중에 작용해서 웬만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그런 곳에 우리 나라 사람이 변호사로 있었다니 너무나 놀라웠다. 유럽에서 통용되는 법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교회법에도 정통해야 하며, 역사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시간이 멈춘듯한 바티칸에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라틴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가이다. 머나먼 동양의 사람이 이제는 사라진 언어인 서양의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로마와 한국을 오가며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했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일까, 그가 가진 경험과 이야기는 얼마나 무궁무진할 것인가.

그것을 반증하듯 그의 강의는 각 학교에서 청강을 하러 오는 학생들로 교실이 넘쳤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는 서강대에서 라틴어 수업을 진행했는데 라틴어 수업이 라틴어만을 가르쳐 주는 수업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그의 성찰을 들려주는 수업으로서 타 학교에까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라틴어의 조합으로서 요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크로스오버적인 강의를 그는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이 책의 각 챕터를 통해 그의 라틴어 수업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과 삶에 대한 시각을 느껴볼 수 있었다. 

각 챕터의 제목은 라틴어로 구성되어 있다. 라틴어는 유럽과 미국을 아우르는 모든 언어의 근원과 같은 것이라서, 한 단어를 설명해주면서 이 라틴어의 어간이 어떻게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에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동양이 한문을 쓰는 한자문화권으로서 발전해 온 것을 보면, 서양에서는 라틴어가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라틴어로 이루어진 옛 격언들이나 유명한 위인들의 말을 풀이해주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자신의 인생 경험을 들려준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의 이야기이다. 강단에 서는 학식이 많은 교수님이기 이전에 그는 이 책에서 서품을 받은 사제였다. 성직자답게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인간적으로, 감동적으로 전달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라틴어의 근원과 의미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앎의 즐거움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인생 이야기가 진하게 다가왔다. 특히 챕터7의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라는 파트를 인상깊게 읽었는데, 하루종일 노동을 하듯 공부를 하는 학자로서의 삶이 겉으로는 고고해 보이나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느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