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과학이 이루어낸 문명과 편리함에 대해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도 알고 있듯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란 범 우주 속의 지구만큼이나 사소하고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상청에서 허구헌날 날씨를 틀리더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날씨를 맞추는 것을 더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얼마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빅뱅 모의 실험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입자를 빛의 속도로 충돌시켜 빅뱅 직후의 상황을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는 실험이라고 했다. 조금 성급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두줄을 읽고 나서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입자충돌로 인해 어떠한 물리학적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실험이라면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빅뱅재현에 그 목적이 있는 실험이라면 현대과학이 우주의 변수를 모두 고려하여 실험모형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실험을 반대하는 과학자들도 꽤 있었던 모양인데 그 이유는 블랙홀이 생성되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우스운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 모의 빅뱅실험을 어쨌든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나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과학자들의 오만함은 일단 제쳐두고 인간이 만들어낸 블랙홀로 인해서 지구가 쪼그라들어 멸망할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력에 질투를 느껴버렸다. 현 SF 소설가들은 밥줄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주일 후에 두 차례나 실험이 중단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 이유는 더 엉뚱하게도 장비가 파손되어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가 이를 주시하고 있었다면 개망신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참패한 실험이다. 실험변수를 제어하지 못한 것은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하나의 성과지만 실험장비로 인한 실패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만한 우주 과학은 큰 상처를 입었고 나는 통쾌했다. 보다 겸손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개망신은 재차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과학을 그다지 신용하지 않고 그러므로 과학서적을 별로 읽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훌륭한 변명을 찾아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나의 지적 멘티인 유시민이 ’지속 가능한 퇴보’를 인용하며 추천하지 않았다면 자의로 읽었을리는 없었을 것 같다.

  가이아 이론은 거대한 지구가 마치 살아있는 것과 같이 자기 조절 능력을 갖춘 생명 시스템이라는 말이다. 지금에서야 학계에서 인정받은 비중있는 가설이지만 불과 3,40년 전만 하더라도 지동설이 인정받지 못한 것처럼 비웃음을 샀었다고 했다. 지구가 살아있다는 동화적인 가설은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며 무시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직관이나 상상에 의해서 발전된 경우가 더 많다. 제한된 과학이론을 들먹이는 자보다는 끊임없이 상상하는 무과학적인간이 과학에게는 더 이로운 경우가 많다. 과연 과학이 자랑하는 논리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 논리는 하나의 체계일 뿐이다.

  나는 이 겸손한 과학자의 발칙한 상상력에 주목해서 책을 읽었다. 저자의 직관으로 인한 아기자기한 실험들과 도저히 과학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의 상상력, 의식의 전환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이아의 복수? 물론 그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가 제시한 것처럼 가이아가 당장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 같지는 않다. 저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이아는 인내력 있고 강한 생명체다. 가이아가 선택한 가능한 네 가지 대안 병원체제거, 만성감염, 숙주의 사망, 공생. 요즘 이 네가지 시나리오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각각의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저자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책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책이다. 당신도 이러한 상상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번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가이아의복수, 제임스러브록